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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Jan 26. 2018

꿈과 가족, 그것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에요.

영화, <코코>

픽사는 시종일관 따뜻하다. 겨울왕국을 위시한 디즈니의 주 메시지가 ‘진정한 나’로 자라나는 ‘성장영화’라고 한다면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주체적인 자아의 발현을 위해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것이라고 할까), 픽사의 <업>, <인사이드 아웃>은 인생-여러 굴곡점이 포함된- 자체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랄까. 


영화 <코코>


  이런 성격의 디즈니와 픽사가 결합 후, 첫 번째 작품으로 내놓은 영화여서 그럴까. 이 영화는 미구엘이 ‘자신의 기타’를 찾아가는 성장영화이면서, 동시에 인생 속에서 씻기지 않는 여러 상처와 결핍들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아늑함이 동시에 있다.


이런 성격의 디즈니와 픽사가 결합 후, 첫 번째 작품으로 내놓은 영화여서 그럴까. 이 영화는 미구엘이 자신의 기타를 찾아가는 성장영화이면서, 동시에 인생 속에서 씻기지 않는 여러 결핍을 따스하게 감싸는 아늑함이 동시에 있다. 


미구엘의 집은 대대적으로 구두를 제작하는 가문이다. 함께 사는 할머니, 부모님, 동생까지 모두 힘을 모아 구두를 제작한다. 미구엘은 구두를 제작하기에 아직 어려, 장터에 나가 마리아치(멕시코 거리악사)의 구두를 닦아주는 일을 한다. 그러나 정작 미구엘이 하고싶은 일은 따로 있다. 그것은 멋진 뮤지션이 되는 것인데, 문제는 가족이 음악을 ‘혐오’한다는 데 있다. 가족은 미구엘이 가업을 이어서 구두장이가 되기를 원한다.  


영화 <코코>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내가 이루고 싶은 꿈과 주어진  가업을 수행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꿈과 가족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만 하는, 서로 양립하지 못하는 관계인 걸까. 이 점에서 나는 영화 <라라랜드>의 엔딩에서 꿈과 사랑이 서로 양립하지 못한다는 서글픈 장면이 떠올랐다. 

 

꿈과 가족 외에도 이 영화에서는 대립항을 이루는 두 영역이 대조를 이룬다.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 현세와 영계, 만남과 이별까지. 명암이 극명한 소재를 통해 픽사와 디즈니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걸까. 


대립항들이 서로 명료한데, ‘꿈과 가족’의 대립은 왜 굳이 4대라는 긴 세월로 설정되었을까. 그리고 왜 꿈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은 영화의 제목처럼 코코가 아니라 미구엘인가. 코코가 아니라면, 코코의 딸(미구엘의 할머니)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도 왜 굳이 4대라는 긴 시간을 내려가 미구엘이 그 갈등을 겪어야 하는가. 이 점은 영화의 제목이 미구엘이 아니라, 코코인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상처와 갈등은 반드시 화해하고 봉합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영화 <코코>


사실 고조할머니 이멜다는 음악을 처음부터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헥터와의 신혼 시절,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헥터는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을 즐겼다. 그런데 코코가 태어나면서부터, 균열이 일었다.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헥터에게 코코의 탄생은 일(음악)과 가족(코코)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이게 한 것이다. 헥터는 가족(코코)이 아닌, 음악을 선택했고, 급기야 집을 나간다. 그래서 그는 아내 이멜다와 딸 코코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얼마 못 가 헥터는 낯선 곳에서 목숨을 거둔다. 그러니까, 딸 코코는 헥터에게 삶에 대한 회환을 풀어야 하는 발원점이자 근원이다. 그렇게 때문에 영화의 제목은 <미구엘>이 아니라 <코코>다.


그가 굳이 미구엘의 입을 빌려, 딸 코코에게 용서를 구하는 건 미구엘이 그의 대리인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다. 첫째, 미구엘은 가업인 구두의 대물림에서 비껴나있는 존재다. 둘째, 미구엘 역시 음악으로 가족과 갈등이 벌어진다. 그래서 미구엘은 헥터의 사과를 대언할 자격을 획득한다. 


영화 <코코>


그러니까, 꿈을 좇기 위해 가족을 버림으로써 가족에게 큰 상처를 입힌 것야 4대라는 길고 긴 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잘못된 것은 음악이 아니라, 음악 때문에 ‘가족을 버린 행동’이라고 말하는 픽사는 이 점에서 ‘가족-꿈’의 대립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마마 이멜다의 말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픽사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상향이 꿈과 가족을 모두 손에서 놓지 않은 코코의 가족이라면, 반대로 픽사와 디즈니가 생각하기에 가장 질이 나쁜 악당은 누군가. 바로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사람(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이다. 꿈이 위대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인권과 자유를 해치거나 침해할 권리는 없다. 그런데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꿈을 가차 없이 짓밟고 내팽개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델라 크루즈는 과거(현실)에서 헥터, 그리고 저승에서 미구엘까지 두 명이나 죽였다. (비록 미구엘은 살아났지만, 죽일 의지를 갖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음을 생각한다면) 그러므로 현실에서 종에 깔려 죽었던 델라 크루즈가 저승에서 또다시 종에 깔려 죽음을 맞이하는 설정(두 번 겪는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코코>


결국 미구엘은 자신의 기타를 찾았다. 코코의 가족에게 오랜시간 쌓여왔던 해묵은 슬픔과 결핍은 끝내 해원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꿈과 가족, 그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어느 한쪽은 포기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 같은 것도 아니다. 가족은 우리가 아름다운 꿈을 꾸고, 앙상한 현실에서 황홀한 꿈을 이뤄내기를 응원해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작은 바람이 있다면 가족의 묵묵한 응원을 기억(생각) 해주기만을(remember me) 바랄 뿐이다.



영화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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