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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Mar 29. 2018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러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눈부신 햇살이 평화로운 그때를 비춘다. 나무는 유난히 푸른 빛을 일렁이며 서있다. 투명에 가까운 에메랄드 바다는 잘게 부서지며 몸을 뒤집는다. 허공에서 맴도는 모든 공기에 배인 눈부신 빛은 축복일까, 아픔일까. 그러니까, 1983년 그 해 여름은 모든 낮이 충만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여러 면에서 아름다운 영화다. 소재의 특성상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릴 수 있겠으나, 그 안에 서린 감정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한다한들 없앨 수도 없다) 가냘프기만 했던 감정은 애달픔으로 깊이를 갖췄고, 설레기만 했던 시절은 좌절과 고독으로 인해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어둠을 갖춰, 그 사랑은 음화가 선명한 한 폭의 작품이 되었다. 

 

엘리오(티모시 샬라에)는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 이탈리아에서 가족과 함께 고즈넉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온 올리버(아미 해머)는 엘리오의 가족과 함께 방학 동안 지낸다. 엘리오는 기꺼이 자신의 방을 올리버에게 내준다. 그때 엘리오는 알았을까, 자신이 내어주는 건 방뿐만이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임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랑은 나에게 틈입해오는 타자를 거부하지 않는다. 외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상대방에게 내어준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인의 자리로, 때론 지극히 대접하는 손님의 자리로. 사랑은 자신의 자리로 타인을 초대한다. 그런 면에서 엘리오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인 강으로 올리버를 데려가 “이곳은 그동안 내가 주인이었던 곳이야” 라고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사랑은 상대방을 기어이 나의 자리로 초대한다. 


사랑하는 동안 나는 상대와 점점 같아진다. 큰 옷이 싫다 했던 엘리오는 올리버의 큰 셔츠를 입고, 그의 목걸이를 한다. 상대방과 같아지려는 변화는 자발적이기에 더욱 가치 있다. 올리버는 고대 헬라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의 책 ‘우주의 파편들’ 중  한 구절에 대해 “어떤 것은 변함으로써 같음을 유지한다”고 해석한다. 이 구절은 다름 아닌, 사랑의 속성과 일치한다. ‘그가 그이므로, 또한 내가 나이므로’ (몽테뉴) 서로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사랑은 흠모했던 상대방과 같아졌을 때 역설적으로 상대방에게 비밀스러운 안온함을 느낀다. 내가 상대방과 같아지고, 상대방이 나와 같아지면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랑은 서로를 애타게 갈망하며 서서히 다가가다가 겹쳐지는 두 인격 사이의 한 지점을 기어이 찾아내 서로를 하나로 묶어준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신비’(Mystery of Love)라고 역설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I call you by mine”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러줘. 나는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이 말은 사랑의 감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극치의 문장일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나로 명명되기를 포기하고, 너로 명명되고 싶은 은밀한 욕구는 아마도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존재 증명의 유일한 방식일 것이다. 카메라 앵글의 상하를 뒤집어 찍은 이 쇼트는 이러한 사랑의 속성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촬영기법이 아니었을까.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서, 사랑의 숨결을 느낄 때까지. 고단한 두 어깨는 세상의 모진 시선을 힘겹게 이고 갈 지라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함께할 가을을 기다리던 사랑이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시간은 부지런히 겨울을 실어 옮겼다.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는 차가운 눈 속에 자취를 숨겼고, 속내까지 투명하게 보여주던 호수는 시리도록 차갑게 얼어버렸다. 머릿속에는 서럽게 아픈 멜로디가 아름답게 울리는데, 올리버로 불리길 원했던 엘리오에게는 끝내 고독만이 남았다. 그러나 마음에 거칠게 흔적을 남긴 감정은 지울 수 없다. 아니, 지운다 해도 그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내 이름에 담겼던 상대방의 자취가 옅어진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은. 끝내 더 이상 불리지도, 부르지도 않을 이름은 황량히 타고 있는 불길 속으로 던져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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