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식 May 22. 2018

달콤한 감정과 무모한 의지

영화 <케이크 메이커>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의 리뷰입니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안 달콤하다. 동시에 달콤했던 만큼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사랑하는 만큼 행복했다면, 사랑하는 만큼 고통스럽다. 사랑은 분명,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양 극한을 오가는 감정일 것이다. 사랑은 서로를 긍정하는 만큼 부정 역시 그 언저리에서 스산히 맴돌고 있으니까. 어쩌면 사랑을 움직이는 힘 자체는 두 가지의 양 극단의 감정을 오가는 에너지가 아닐까.  

 

사랑의 이런 속성을 영화 <케이크 메이커>는 보여준다. 베를린 크레덴츠 베이커리의 파티쉐인 토마스(팀 칼코프)는 독일로 비즈니스 출장 온 유대인 오렌(로이 밀러)과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이스라엘로 돌아간 오렌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던 찰나, 그가 이스라엘에서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토마스는 듣게 된다. 이별의 말조차 하지 못했는데,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토마스는 이제, 어떻게 살까.  


영화 <케이크 메이커>


 

그때 토마스가 한 행동은 가게 문을 닫고, 이스라엘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다. 그곳에서 그는 오렌의 흔적을 갈망하며 찾아다닌다. 오렌이 자주 이용한 수영장, 라커룸에 남겨진 그의 수영복, 심지어 오렌의 아내인 아나트(사라 애들러)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발견하려고 했던 걸까. 아픈 기억을 더 생생하게 만들려는 그의 심리는 무엇일까. 

 

사랑을 잃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소중한 흔적과 기억을 모조리 지움으로써 상실감을 극복하기도 하지만, 토마스는 그럴 수 없다. 기억은 순간순간 여러 경로를 통해 일상에 틈입해오기 때문이다. 디저트로 먹은 케이크 한 조각을 통해, 거리를 걷다가 문득 들려온 음악을 통해, 우연히 걷던 거리에서 새어나온 음악을 통해, 그렇게 기억은 잔잔한 호수로 던진 돌처럼 평온하던 일상에 거친 일렁임을 만든다. 토마스는 오렌을 사랑했던 만큼 고통스러웠으므로, 그를 잊지 않고 외려 적극적으로 그의 흔적들을 갈구함으로써 상실감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억이란 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상기되기 마련이다. 

 

묵묵히 맡은 일을 하던 토마스에게 서서히 아나트는 마음을 연다. 급기야 ‘샤밧 기간’(이스라엘의 가족이 함께 지키는 안식일. 이 때는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한다) 동안, 가족 식사에 그를 초대한다. 아나트와 이타이(아들), 토마스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토마스는 남편의 자리에 앉는다. 이타이는 그의 머리에 키파(유대인 전통 모자)를 씌어주며 그를 가족으로 인정한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을 쉽게 가족으로 묶으며 기분 좋은 엔딩을 내지 않는다. 토마스와 아나트가 로맨틱한 첫 키스를 나눈 뒤부터, 영화 <케이크 메이커>는 플래시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서사를 뒤엉키게 풀어나간다. 아마도 그건, 사랑의 기억 형태 자체가 뒤엉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토마스는 오렌에 대한 감정이 뒤엉켜있다. 오렌의 부인인 아나트 역시 남편에게 배신감(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나트는 우연히 남편의 외도 대상이 다름 아닌 토마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이 둘은 파국을 맞고, 토마스는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


 

사랑은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기어이 그 감정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들게 하는 걸까. 토마스는 아나트가 오렌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아나트 역시 마찬가지다. 둘은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도, 서로에게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우두커니 서있는 서늘한 미래를 예감하면서도 무모하게 세월을 약속하고서야 만족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사랑은 달콤한 감정과 무모한 의지가 함께 하는 것이다. 오렌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로 온 토마스, 파국을 맞이했으면서도 토마스를 찾아 독일로 온 아나트. 영화는 퇴근하는 토마스에게 끝내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 아나트를 보여주며 마무리한다. 그러나 아나트는 결국 토마스에게 말을 건네지 않을까. 토마스와 아나트는 이미 둘 앞에 놓인 서늘한 미래를 알면서도 달콤한 감정으로 빠졌고, 가슴 아픈 과거를 알면서도 기꺼이 잊었으니까. 다만 하늘에는 속내를 알 수 없는 구름만이 잔뜩 껴있었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써야 할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