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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May 31. 2018

살아서 영화를 보는 이유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


누군가에겐 일상이며 생활이었던 삶이 영화라는 작품이 된다면 그만큼 영예로운 일이 있을까. 그 말은 그 사람의 삶이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삶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에델과 어니스트>는 에델과 어니스트의 삶에 바치는 최고의 찬사이자, 송영(Doxology)이다.


우유배달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남편 어니스트와 에델은 부부다. 처음 결혼할 때만 해도 없는 살림으로 소박하게 시작해야했지만, 그 둘은 사랑 하나로 현실의 결핍들을 조금씩 메워나갔다.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문부터 펼쳐드는 어니스트는 영락없이 아저씨의 면모를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걱정을 혼자 다 짊어지는 듯, 내뱉는 한숨과 혀를 차는 소리의 디테일은 덤. 한편 아내 에델은 정치같은 머리 아픈 이야기하면 딱 질색한다. 그녀가 관심있는 것은 살림과 아들의 안위뿐이다.


일반적인 서사의 흐름에서라면,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상은 캐릭터의 내적, 외적 변화겠지만 이 영화에서 캐릭터는 극적일 정도로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대상은 바로 에델과 어니스트의 평범함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시간은 담장을 뛰어넘듯, 훌쩍 훌쩍 건너뛰곤 한다. 에델과 어니스트의 연애시절부터 보여줬으니까, 영화에서 다루는 시간은 거의 40~50년 정도일 것이다. 그 오랜 시간을 거쳐가면서도, 이 캐릭터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노동당을 응원하고, 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을 버거워하지 않는다.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혹여나 좋은 며느리가 아닌 사람을 데려왔을까봐 걱정한다.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일반적인 부모의 모습이 아닌가. 넉넉하지는 않아도, 주어진 환경에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영화 속 주인공이라는 것은 마음 따뜻해지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삶이 영화라는 예술이자 작품이라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영화는 바로 그 삶에 찬사를 보내고 있으니까.


이 영화를 보며 잠시라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면,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를 보며, 또한 영화는 우리의 삶에 눈을 맞추며 위무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서 영화를 보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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