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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Aug 28. 2018

<어른도감>은 <인간도감>이기도 하다.

영화 <어른도감>


* 이 글에는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 한가운데 한 아이가 놓여있다. 저 소녀는 어디를 보는 걸까, 무슨 생각을 깊게 할까. 앉아있는 소녀의 태도는 의연하고, 시선은 단단하다. 소녀의 상황이 장례식을 치르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아이의 태도에 놀라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저렇게 의연하다니, 아마도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그걸 성숙이라고 해야 할까, 조숙이라고 해야 할까. 뭐가 됐든, 이 소녀는 나이답지 않은 조숙한 모습으로 자신보다 성숙할 관객의 마음을 고스란히 얻는다.



영화 <어른도감>은 엄태구와 이재인이 투톱으로 이끌고 가는 영화다. 두 인물끼리 주고받는 에너지가 꽤 힘을 얻는다. 엄태구는 특유의 선이 굵은 에너지로 앞을 치고 나가고, 이재인은 혹시나 놓쳐버렸을 감정의 조각들을 세심하게 쓸어 담아 뒤에서 보좌해주는 듯한 리액션을 보여준다.(이 영화에서 엄태구의 연기는 이전에 많이 봐왔던 에너지와 결을 달리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능청스러움과 기름기가 넘친달까. 그럼에도 그 특유의 선 굵은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기묘하게 역할에 녹아들어 그만의 확실한 매력이 된다.)  확실히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연기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영화 <어른도감>


인물과 적절한 거리를 짚어낸 카메라의 시선처리도 인상깊다. 때로는 인물에게 마음이 갈 수 있도록 두 인물을 클로즈업해서 관객을 잡아당기고, 때로는 멀리서 지켜봄으로써 인물과 지나치게 가까워진 관객을 살짝 밀어낸다. 관객은 인물과 동일해지기도 하고, 동시에 이 이야기에 단지 구경꾼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 비현실적인 구원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현실적이고, 또 그래서 사람을 사려 깊게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영화는 시작했지만, 러닝타임 내내 살아생전 아버지와 행복했던 순간을 플래시백으로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 영화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일러주는 대목이다. 이건, 죽은 사람에 대한 추억으로 삶을 채우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극적인 일을 겪었지만, 의연하게 주어진 내 삶의 몫을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어른도감>


상실을 겪은 사람은 경언(이재인)만이 아니다. 재민(엄태구)과 점희(서정연) 역시 가족의 상실을 겪었다. 점희는 사랑하는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재민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다. 그런 상실을 겪은 인물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도록 한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영화는 구원을 손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진정한 구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아마도 영화 <어른도감>의 최고 장면은 경언이 갓 태어난 순간, 엄마가 갓난아기 경언을 보며 지었던 표정을 재민이 재현해내는 장면이 아닐까. 내내 누군가의 ‘죽음’을 주된 모티프로 삼았던 영화는 정반대로 ‘생명’ 모티프를 단 한 번만 사용함으로써 더욱 그것을 강조한다. 아버지의 죽음, 딸의 죽음, (재민의) 아버지의 죽음은 모두 생명의 탄생 앞에 고개를 숙인다. 밤하늘 별의 광휘는 서늘한 어둠의 배경 안에서 더욱 반짝인다. 


결국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겪은 뒤의 삶이다. 아픔이 아니라, 회복과정이다. 생채기는 깊고, 앞으로 뻗어있는 삶은 길다. 고통스러울 때, 표현하지 않고 참아내야 하는 게 어른이라면, 사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어른이다. 그리고 이말은 또 다른 의미까지 담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을 끌어안고 사는 거라고. 결국 그들의 결핍은 해결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각자 주어진 1인분의 몫을 흘리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영화 <어른도감>



“그래서 결국 마지막엔 행복했나요?”라고 묻지만, 사실 유구한 삶에서 지속되는 상태가 어디 있을까. 또다시 절망의 구렁텅이에 발을 헛디딜지라도, 다시 발을 빼내 앞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내딛는 그 발걸음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를 아무 미련 없이 길가에 내버려두고, 주유소까지 먼 길을 주저없이 걸어가는 것이라고. 때로 밤하늘 어둠이 짙게 느껴져도, 그 어둠보다 삶의 빛이 더욱 찬란한 거라고 영화 <어른도감>은 조용히, 그리고 사려 깊게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서 <어른도감>은 결국 <인간도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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