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겹쳐지고, 외면했던 어떤 순간들에 대해

by 이정식


가을과 밤에 대해 적기로 마음먹은 뒤, 내가 했던 첫 번째 일은 리스트를 적어 내려간 것이다. 가을을 닮은 것들, 밤을 닮은 것들. 미약하게나마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던 그 어떤 것들.


단풍

낙엽

린넨천

바래다

텅 빈

잘 익은 밤

서늘하다

나무

바람

바지

내 생일

은행

하늘

밤색, 그리고 밤하늘


가을과 밤을 연관시키려다가, 문득 밤색이 떠올랐다. 그건 잘 여문 밤의 껍질 색을 의미하지만, 내게는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어둑한 밤하늘의 색을 일컫는 말로 다가온다. 다시, 그렇다면 가을과 밤은 무슨 연관인 걸까. 어떤 점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를까. 서로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그리고 서로를 완전히 외면하는 지점에서 발견한 그것은, 또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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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것들을 더듬으며 써 내려간 글이다. 만져질 수 없는-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록해 나간 사소한 문장들을 가을로 간신히 봉합한 글일 뿐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을 서슴없이 나는 맞이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 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조심스럽고도, 과감한 생각이 일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