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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Oct 09. 2018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영화 <스타 이즈 본>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의 리뷰입니다. 글에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데미안 셔젤 감독의 영화 <라라랜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만약,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과 미아가 결혼했다면, <스타 이즈 본>의 잭슨-앨리 부부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라라랜드>는 위악적이지 않게 차분히 읊조린다. 꿈과 사랑은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라고. 어떤 선택이든, 그에 대한 선택과 포기가 수반되는 것이라고. 이것은 <스타 이즈 본>도 마찬가지인데, 팝가수가 된 앨리(레이디 가가)는 빽빽한 연습 스케줄과 끊이지 않는 공연으로 인해 남편과의 사랑을 가꿀 여유가 점점 줄어든다. 그럴 때마다, 못내 남편에게 미안해하는 앨리에게 매니저인 레즈(앤드류 다이스 클레이)는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감독인 브래들리 쿠퍼 역시도 사랑과 꿈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는 서늘한 말을 건네는 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영화 <스타 이즈 본>


잭슨(브래들리 쿠퍼)은 인기 절정을 달리는 락스타다. 그의 공연에는 늘 관중이 빽빽이 들어차 환호성을 연신 내지른다. (그의 인기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실제 미국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이라고 불리는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Festival)에서 공연하는 영상을 실황으로 담기도 했다고. 앨리(레이디 가가)의 공연 장면 역시 그 페스티벌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공연을 마친 그는 술을 더 마시고 싶어 술집(드랙퀸 바)에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La Vie en Rose”(라비앙로즈)를 부르는 앨리를 보고, 그녀에게 반해 말을 건넨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대화는 점점 깊어지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사실, 이렇게 보면 <스타 이즈 본>은 뻔한 로맨틱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혹한 시련이 닥쳐와 결국 파국에 이르는 사랑 이야기. (라라랜드의 전체 플롯 라인 역시 이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영화 <스타 이즈 본>은 무엇이 특별할까. 



영화 <스타 이즈 본>


이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타 이즈 본>은 제목 그대로, 스타의 탄생을 보여준다고. 잭슨은 앨리에게 말한다. “당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당신만의 방식으로 해”. 드래퀸바에서 타인의 노래를 부르던 앨리는(에디트 피아프-‘라비앙로즈’), 잭슨과의 대화 이후에 스스로의 멜로디를 만들어 자작곡을 불렀다. 잭슨은 불행한 유년 시절 이야기를 앨리에게 말해주었고, 앨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느낀 감정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잭슨은 앨리라는 ‘스타의 탄생’을 위해,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이 역시 <라라랜드>에서의 미아가 꿈을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세바스찬이 밀어주던 것과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잭슨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앨리의 새 노래가 되었다. 


이처럼 영화에게서 물러나 다소 관조적으로 본다면, 이 영화가 낭만적일수 있겠으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둘의 사랑이 너무나 절실하다. 앨리가 점점 인기를 얻을 때, 잭슨은 평정심을 잃는다. 그순간 그 감정의 정체는 (물론 뒤섞여있겠으나) 인기를 얻는 앨리에 대한 질투심이라기보다, 앨리가 스타가 됨으로써 둘의 사랑이 좌초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앨리 역시, 사랑이 절실한 건 마찬가지다. 잭슨의 약물, 알코올중독 증세가 점점 심해져도 앨리는 그를 지겨워 하지 않는다. 다시 그가 자신의 삶을 찾도록  그녀는 도와준다.


영화 <스타 이즈 본>


그렇다면, 둘의 사랑은 왜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되었을까. 사랑은 왜 허망하게 끝이 난 걸까. 그건, 사랑은 서로를 향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지탱되는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꿈이 소중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처럼, 사랑 역시 그것을 가꾸는 노력을 끊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간곡히 말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영화는 내게 더 서늘한 지점까지 내려가 말을 건넨다. 결국 인간은 시간 앞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냐고. 사랑으로 충만한 생생한 현재는 시간을 통과한 뒤에는 결국 빛바랜 과거가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현재,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랑은 결국 세월의 바람에 서서히 닳아져 풍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영화 <스타 이즈 본>



어쩌면, 음악은 매 순간 현재만을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과 가장 닮아있는 예술이 아닐까. 음악 하는 동안, 결코 뒤를 돌아볼 수 없다. 인간의 시간이 그렇듯. 매 순간이 최초의 경험이고, 매 마디가 최초의 연주다. 과거를 향하지 않으므로, 사랑을 그렇게 하듯, 우리는 매 순간 후회 없이 임해야 한다.


영화 <스타 이즈 본>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 앨리는 1963년에 숨을 거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라비앙로즈’를 불렀다. 그리고, 잭슨이 죽은 뒤, 앨리는 그의 추모 공연에서 그가 작곡한 ‘I’ll never love again’을 불렀다. 그러니까, 유한한 인간은 시간 앞에 패배하지만, 음악은 맴을 그리며 그 자리에서 되풀이된다. 아마, 이것이 인간의 시간과 음악이 가장 다른 점일 것이다. 시간 앞에서 영원히 패배하는 인간은 오직 음악을 통해서만 영원을 꿈꾼다. 이것이,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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