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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Oct 01. 2018

할멈도 잘 지내고 있소?

영화 <나부야 나부야>

△ 이 글은 영화 <나부야 나부야>를 보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할멈, 오랜만에 불러보오. 나는 여기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소. 햇살이 너울거리는 날이면, 삐걱대는 문을 열고 마루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는 버릇도 여전하오. 가끔씩 큼직큼직하게 썬 두부를 많이 넣어 김치찌개를 혼자서 해 먹기도 하오. 변한 게 있다면, 투명한 새 눈이 생겼소. 내 눈이 침침한게 영 보기 안된 건지, 딸 녀석이 안경을 새로 맞춰줬소. 당신이 만약 이 모습을 본다면, 다 늙어빠진 영감이 멋부린다고 사람들 보기에 남사스럽다고 할게 분명하오. 그래도 다행히 안경 덕분에 얼굴 구석구석으로 핀 저승꽃이 조금 가려지기도 한 것 같소. 이러면 자식 녀석들에게 내 얼굴을 보이는걸, 조금은 덜 신경 써도 되겠지.


나는 그렇게 잘 지내오. 가끔 사레가 걸리면 기침이 잘 멎진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혼자서 걸을 수 있소. 몇 시간이고 앉아서 밖을 바라볼 수도 있고.
할멈도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소?


영화 <나부야 나부야>



어제도 우리 딸이 이곳까지 찾아와 군산으로 가자고 설득했소. 아버지 혼자서 어떻게 밥 해먹고, 살아갈 거냐고 나무라듯 나를 걱정합디다. 할멈과 같이 있을 때, 내가 밥이며 빨래며, 심지어 요강까지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다는걸, 딸 녀석은 몰라서 그러는가 싶기도 하오. 그러고는, 차마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딴에는 몰래 눈물을 슬쩍 훔치는걸, 나는 보았소. 그럴수록 내 마음도 더욱 무거워진다는 것을, 그 녀석도 알고 있겠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나 봅디다.


그래도 나는 군산으로 가고 싶지 않소. 지난여름, 딸아이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그곳에서 한 달 정도 지내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이곳 같지가 않소. 조금 출출하면 금방 음식을 뚝딱 만들어 먹고, 몸이 슬슬 아파오면 그대로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아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아무래도 자식 눈치가 신경 쓰여 여간 불편했던 게 아니었소.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완고한 내 고집에 딸아이가 서운한 눈치를 서슴없이 드러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소. 나는 계속 이곳에서 살 것이오.


지난겨울은 정말 추웠소. 얼마나 추웠는지, 대야에 받아둔 물이 흘러넘치는 모양 그대로 얼음이 됐소. 할멈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었지. 그런데도 추운 겨울, 눈이 오는 날이면 벌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입을 벌리며 ‘온 천지가 하야니까 좋다’라고 하얗게 웃었지. 추워서 밖에도 못 나오는 사람이 눈만 보면 어떻게 아기처럼 행복해하는지, 나는 그 모습이 퍽 우스웠소. 눈이 제법 왔을 때, 나는 장난을 치고 싶어 작은 눈사람을 두 개 만들었지. 작은 돌 알갱이 두 개로 눈을 붙이고, 가늘고 작은 나뭇가지로 코를 만들어 할멈에게 내밀었을 때, 환하게 웃음을 터뜨리던 그 모습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오. 할멈의 얼굴에 있는 주름은 곳곳마다 세월이 흘러가며 이리저리 파놓은 고랑 같아서 제법 쓸쓸함도 느껴졌는데, 웃을 때만큼은 그 진하던 고랑이 아무 흔적 없이 사라졌소. 이제야 말하지만, 나는 하얀 눈보다 할멈의 웃음이 훨씬 더 좋았소.



영화 <나부야 나부야>


이대로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는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눈이 녹기 시작했소. 꽃봉오리가 조심스럽게 몸을 내밀었소. 그 무렵 내가 당신에게 만들어 주었던 비녀를 할멈은 기억하고 있소? 있는 힘껏 뒤 머리카락을 움켜쥐어야 할 비녀는 자꾸 미끄러질 때가 많았지. 비녀가 미끄러질 때마다, 할멈의 뒤 머리카락은 힘없이 내려왔소. 나는 할멈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곱게 빗어주다 말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소. 산으로 가서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고른 다음, 혹시라도 표면의 뾰족한 부분에 할멈이 찔릴까 봐 부드럽게 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동안 겉을 갈았소. 그날 늦은 오후, 내가 할멈에게 그 비녀를 건넸을 때 할멈은 ‘영감, 오늘 욕봤네’, 그리고 ‘영감, 고맙소’를 번갈아가며 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오. 내가 차려온 저녁을 함께 먹은 뒤, 그때도 할멈은 대뜸 ‘영감, 참으로 고맙소, 고맙소’를 말했소. 마치 그 말 외에 다른 말은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그날 밤, 함께 등을 벽에 기대고 티비를 보다가 나는 물었소. 할멈, 나는 다시 태어나면 할멈과 결혼해야 하겠는데, 할멈은 어떻게 할라나? 그 말을 듣고나서, 당신이 큰 소리로 꽤 오랫동안 행복하게 웃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오. 당신은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지. 우습다. 참으로 우습다.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재차 질문했을 때, 나도 영감과 같지라고 당신은 대답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소.



영화 <나부야 나부야>



언젠가 할멈에게 내가 왜 좋은가라고 물었을 때, 당신은 이렇게 대답했소. 얼굴도 좋고, 부지런해서 좋고. 사람이 게으르면 못 써. 이 양반은 부지런하잖아. 그런데 나는 가만히 있고, 게을러. 게으르다는 당신의 말이 거짓말임을 나는 알고 있소. 몇 년 전부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서는 것도 간신히 할 수 있던 당신. 하루의 대부분을 방 안과 마루에 앉은 채로 보내야만 했던 당신. 그렇기 때문에 살림살이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고, 내게 고맙소와 미안합니다를 늘 말할 수밖에 없던 당신. 마치 그것만이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부지런함인 것처럼.


산에 다녀온다고 허리가 아파 잠시 마룻바닥에 누웠을 때, 당신은 다 마른 빨랫감을 가지러 마당으로 갔지. 당신은 갓난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게 다리를 후들거리며 간신히 걸음을 이어나갔소. 내가 자는 줄 알았겠지만, 사실 눈을 감지 않고 당신의 걸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소. 그 비틀거리는 걸음을 두고, 나는 도저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었소. 절대적으로 연약한 상태, 맹목적인 상태, 내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상태. 마치 아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당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오.


당신은 부지런한 것을 좋아했지만, 나는 세월이 부지런히 계절을 실어나르는 걸 두려워했음을 당신은 알고 있었소? 할멈, 가을이 좋아, 봄이 좋아라고 물었을 때, 당신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소. 불안한 마음에 다시 내가 물었을 때, 당신은 응?이라고 되물었고, 더 큰 목소리로 내가 같은 질문을 던지니, 당신은 알아듣기를 체념한 듯 으응이라는 짧은 호흡을 내뱉었소. 나는 차마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가을이 더 좋지라고 혼잣말로 마무리했소. 언젠가부터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힘에 부치는 것 같았을 때, 나는 아예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두려웠소. 혹시 또, 못 알아들을까 봐. 이대로 죽음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까 봐.


그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늦은 오후, 해가 뉘엿뉘엿 산 뒤로 숨어가는 것을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소.  양력으로 그믐날이라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 한 살을 더 먹는, 그러니까 자고 내일 아침 일어나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게, 나는 꽤 쓸쓸했소. 이제는 정말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사는구나. 우리는 같은 날, 한 시에 죽자고 신신당부하던 할멈의 말대로 될 수 있을까. 그런 음울한 생각들을 했던 것 같소. 영원히 모른 척하고 싶은 날들이 점점 다가오는 듯하오.



영화 <나부야 나부야>



당신 없이 혼자 적적할 때마다 나는 질문하오. 옛날 사람들은 소한(小寒)이 무척 춥다고 해서, 대한(大寒)에 태어난 사람들은 소한에 태어난 사람들을 절대 만나지 않았다 했는데, 만약 당신과 나의 생일이 소한과 대한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것이오. 내가 대한 사람이어도, 소한 사람인 당신을 만났을까. 반대로, 대한 사람인 당신은 소한 사람인 나를 어떻게 대했을까. 나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멀리하진 않았을까. 아무리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서 생각한다 한들, 내게는 저절로 한가지 답만이 떠올라 혼자 흐뭇해한 적도 여러 번이오.



여기 나무들은 계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의연하오.
내가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시간은 부지런히 계절을 실어 옮기지. 봄이었다가, 여름이고, 가을이었다가, 겨울이 되는 것. 달과 태양이 각각 맴을 그리며 움직이다가 잠깐 일직선으로 겹쳐졌다 흩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여기 머무는 시간은 찰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오.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당신과 함께 있던 그 시간으로 언제든 나는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오. 그 시간의 나는 당신과 함께 마루에 앉아 저 푸른 산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고 있소. 두부를 왕창 넣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은 뒤 서로를 안고 잠을 자오. 꽃이 만발한 다른 산모퉁이로 당신의 환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두발을 힘차게 내디디며 소풍을 가고 있단 말이오.


그러니 당신,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소. 그곳에서는 게으름을 피우진 않소. 누군가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버릇은 거기서도 여전하오.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된 당신의 대답-봄이 좋은지, 가을이 좋은지-은 이제 말해줄 수 있겠소. 비틀대지 않고 걸을 수 있소. 환한 웃음을 터뜨린 채 튼튼한 두 다리로 달릴 수 있소. 거기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소.
나도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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