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으로 혼내시던
작년 11월 25일이었다. 7년 동안, 23살 대학교 3학년 무렵부터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해왔던 사역을 내려놓은 건 그때였다. 그러기 위해서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충 결정한 건 결코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 결정을 마뜩잖아하셨다. 특히 엄마가 많이 아쉬워 하셨는데,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늘 내게 '사역지 알아봤나'를 물어보셨다. 조금이라도 대답을 머뭇머뭇하면, 금방 엄마는 '빨리 알아봐라, 그러다 다 놓친다'라며 나를 채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럴게요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속없는 웃음을 짓곤 했다. 그런 말로 엄마의 걱정이 결코 줄어들지 않을 줄 알면서도 공연히 그랬다. 어쩌면, 엄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게 한 잘못으로부터 그렇게라도 죄책감을 조금 덜어내려는 공연한 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큰 소리를 듣지 않고 자랐다. 내 성격이 온순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성품이 유하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다행히 일찍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를 괜히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엄마가 큰 소리로 내게 혼을 내신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친구랑 노느라 교회 주일 예배를 빼먹었을 때였다. 실수로 아빠의 차 키를 잃어버렸던 일, 초등학교 4학년 한문 시험에서 6점을 맞았던 일, 컴퓨터 게임을 무려 2시간이나 했던 일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마는 나를 크게 혼내셨다. 그날 서럽게 울었는데, 그건 내가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전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가 서늘하고 혹독하게 느껴져서였다. 이 기억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얼마 전에 했던 엄마와의 통화에서 비롯되었다.
통화하기 전날, 엄마는 좋은 교회에서 사역자를 구하고 있는데, 얼른 이력서를 내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생각해보고 다음 날 결정해서 알려주겠다고 황황히 대답했다. 당분간 사역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쉬어보기로 마음먹은 나는, 사실 애초부터 이력서를 넣을 마음이 없었다. 이미 내 마음을 부모님께 몇 번 말씀을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매번 알아본 사역지는 없는지 물었다. 내 결정을 외면하려는 듯. 그런 부모님에게 약간 애처로운 마음도 들어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저녁,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그래, 정식아. 이력서 넣었나?"
"아니, 그냥 안 넣었어."
"야야, 니 왜 그카는데. 사역 안 할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넣으라고 했잖아. 이만큼 좋은 교회 또 찾기 어려운데 이런 데 또 있는 줄 아나."
"엄마, 난..."
"교회도 여기 구미에 있으니까 가끔 집에 들러서 같이 밥도 먹고, 그러다가 자고 가기도 하고. 또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서울에서 했던 거 그대로 구미에서 하기만 해도 정말 좋아할 텐데. 그러다가 또다시 서울 가서 사역해도 되잖아."
그동안 부정적인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았던 엄마가, 이렇게 아쉬움을 길게 길게 늘여놓으며 하는 말이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순간 나는 사과하고 싶어 졌다.
"엄마, 미안해. 걱정하지 마세요. 알아서 잘 하잖아."
"그래, 니가 어련히 하겠냐만은, 아쉬워서 그런다. 아쉬워서."
엄마는 발음보다, 더 큰 숨소리로 말의 끝을 맺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말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미안함과 애처로움이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나보다 내 삶을 더 걱정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미안할 수 있구나. 또는 고맙게 느껴져 이토록 애처로울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어지럽게 섞여서.
그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난 오늘, 아직까지 나는 모른다. 내가 그 교회에 가지 않아 엄마가 그렇게 아쉬워했던 이유를. 그러니까, 내 사역의 미래에 끼칠 영향 때문인 것인지, 혹은 아들과 함께 다시 집에서 지낼 기회가 없어져버렸기 때문인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엄마가 아쉬워하는 소리를 듣는 건 참으로 죄스럽다. 늘 누군가를 아쉽게 만든 사람은 별 수 없이 지는 쪽이다. 엄마와의 사이에서 지는 쪽은 늘 나다. 아마, 엄마는 반대로 생각하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들었던 엄마의 그 힘 있는 목소리가 때로 그립다. 온 힘으로 나를 혼내시던 그 목소리. 그렇게 혼내고 나선, 밤에 따뜻한 차를 건네 주곤 했던 여린 소녀의 마음. 아마 엄마도 매섭게 혼 내신 다음 아셨을테다. 그 순간 졌다는 것을. 이제야 지는 쪽에 속한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게된 나는 따뜻한 차 대신 몇마디 말을 건넨다. 지는 쪽에 속한 자의 변명. 엄마, 그래도 걱정하지 마요. 알아서 잘 해나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