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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Jan 14. 2020

전체주의는 왜 발생하는가? <고찰>

축제의 열기, 그 이면의 싸늘한 논리


게오르크 지멜 Georg Simmel

나치는 근대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압도적인 지지와 열광, 그리고 광적인 축제를 통해 대표자가 된 히틀러가 결코 대다수 독일인의 의지를 대변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을 원했고, 혹은 누가 이웃에 빵집을 운영하던 마음씨 좋은 유대인 아저씨를 가스실로 끌고 가길 원했겠는가? 하지만 국민의 대표자가 되자마자 히틀러는 독일인의 뜻을 대변하기보다 독일인의 뜻을 조작했고, 그들을 환상의 노예로 만들어 조종했다. 대표자에게 권리를 양도한 이상, 독일인은 대표자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아쉬운 것은 나치즘에 의해 가장 피해를 보았던, 혹은 자신도 가스실에서 덧없이 죽을 수도 있었던 철학자 아도르노아렌트가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심각한 맹점을 우회해버렸다는 데 있다. 아도르노가 나치즘과 대량학살이 '이성'이 가진 동일성의 논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평가했다면, 아렌트는 그 원인을 각 개인들의 '무사유'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각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었던 셈이다. 개인들이 이성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타자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못한다면,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항상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귀스타브 르 봉 Gustave Le Bon

하지만 나치즘을 이해하려면 개인 내면의 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의 문제도 함께 숙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점에서 짐멜의 작은 논문 <대도시와 정신적 삶>은 20세기 정치철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글이다. 이 논문에서 짐멜은 산업자본주의의 발달이 대도시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이로부터 인간의 내면세계가 관거와는 다르게 변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주목하는 변화는 대도시인들이 "상호 무관심이나 속내 감추기라는 태도", 그리고 "정서적인 태도보다는 지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시골 사람들보다 대도시인들이 자유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도시에서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상대방에게 어떤 정서적 반응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무관심하고 냉담하며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지적인 대도시인들이 출현하면서 19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치는 전혀 다른 외양을 띠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익명의 도시인들, 자신의 사적인 일에 몰두하는 고독한 개인들을 모여들게 할 것인가?


사실 이것은 정치가들에게는 사활을 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고독한 개인들, 즉 군중을 먼저 묶지 않는다면, 정치가들은 군중이 어떤 우발적인 계기로 상호 연대하여 자신들에게 저항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1871년 기존 대표자들에 대해 강렬히 저항하며 파리를 장악했던 파리코뮌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895년 르봉 Gustave Le Bon (1841~1931)이 《군중심리학 La Psychologie des foules》을 썼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치가들은 자발적으로 군중이 상호 연대하기 전에 그들을 다른 논리에 근거해 응집시킬 필요가 있었다. 만약 이들을 효과적으로 응집시킬 수만 있다면, 과거 히틀러가 조성했던 환호와 열광 속에서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축제 festival'였다. 이것은 물론 로마시대 콜로세움의 열광에 대한 반복이라고 독해될만한 것이다. 대도시의 군중을 일종의 정치적 축제로 묶을 수 있다는 사실의 재발견. 이것은 1934년, 1935년, 그리고 1936년 뉘른베르크에서 연이어 열린 나치 전당 대회나 1937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사실 축제의 논리는 나치에만 통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심지어 대학 학생회장 선거, 초등학교 반장 선거 등에서 상호 무관심하며 지적이고 냉담한 대중을 어떤 열기로 묶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정치 조직이나 행정 조직이 얼마나 많은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축제의 열기 속에서 사유하지 않는 군중을 이리저리 조직하고 있는 다양한 양상들을 말이다. 하지만 물론 이에 대비되는 대항적 성격의 축제도 가능하다. 이것은 결국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저항하는 축제일 것이다. 네그리가 '다중'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바로 이 대항 축제를 통해 구성된 혁명적 군중, 혹은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거부하고 직접민주주의를 꿈꾸는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면으로 보나 우리는 현재 '축제'의 정치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그것은 그만큼 우리가 파편화되어 있고 생활 속에서 강렬한 유대를 상실했다는 점을 반영하는 현상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어떤 결단의 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정치적 '축제'에 의해 휘둘리는 축제의 수동적 대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연대적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 축제의 능동적 주체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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