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의 미학에서 창조의 미학으로
"복제에서 빠져 있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우리는 아우라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 복제기술은 복제품을 대량생산함으로써 일회적 산물을 대량 제조된 산물로서 대치시킨다.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이 두 과정, 즉 복제품의 대량생산과 복제품의 현재화는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것을 마구 뒤흔들어놓았다.“
”송宋나라 원군元君이 어떤 그림을 그리려고 하자, 여러 화공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화공들은 그림을 그리라는 명령을 받고 읍하고 서서 붓을 빨며 먹을 가는데, 방 안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화공들이 반수를 넘을 정도였다. 어떤 화공이 뒤늦게 도착하였지만 여유로운 듯이 종종걸음을 하지도 않았고, 명령을 받고도 읍하고 서는 일도 없이 자신에게 배정된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원군은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였는데, 그는 옷을 벗고 다리를 쭉 뻗어 벌거숭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보고를 받자 원군은 말했다. ‘됐다! 이 사람이 진짜 화가 眞畵者’다.”
“재경梓이라는 유명한 목수가 나무를 깎아서 악기 받침대를 만들었다. 받침대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귀신의 솜씨와 같다면 놀라워했다. 노나라 군주 악기 받침대로 보고 재경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러나 재경이 대답했다. ‘저는 비천한 목수인데, 무슨 별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받침대를 만들 때 저는 기氣를 소모하는 일이 없이 재계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만듭니다. 사흘 동안 재계하며 축하, 상 , 그리고 작록 등에 대한 기대를 마음에 품지 않게 됩니다. 닷새 동안 재계하면 비난과 칭찬, 그리고 잘 만듦과 그렇지 않음에 대한 기대를 마음에 품지 않게 됩니다. 이레 동안 재계하면 문득 내 자신에게 사지와 몸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忘 됩니다. 이때가 되면 국가의 위세에 대한 두려운 생각이 마음속에 없어지게 되고 안으로는 마음이 전일 해지고 밖으로는 방해 요인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다음에 저는 산림으로 들어가 성징과 모양이 좋은 나무를 살펴보다가, 완성된 악기 받침대를 떠올리도록 만드는 나무를 자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결코 나무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저의 역량과 나무의 역량이 부합되니 以天合天, 제가 만든 악기 받침대가 귀신 이 만든 것 같다고 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나는 말하련다. 저들로서는 이제 와서 마음을 바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전과 다른 새로운 가르침을 펼 필요가 없다. 그 대신에 자신들의 신체에게 작별을 고하고 입을 다물면 된다. ‘나는 신체이자 영혼이다.’ 어린아이는 그렇게 말한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이야기하지 못하는가? 그러나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고.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 떼이자 목자이다. 형제여, 네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작은 이성, 그것 또한 너의 신체의 도구, 이를테면 너의 커다란 이성의 작은 도구이자 놀잇감에 불과하다. 너희들은 ‘나 Ich’라고 말하고는 그 말에 긍지를 느낀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 자아보다 더 큰 것들이 있으니 너의 신체와 그 신체의 커다란 이성이 바로 그것들이다. 커다란 이성, 그것은 ‘나’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 자아를 실천한다.”
“정신이란 것, 신체가 그것은 어떤 존재인가? 신체가 벌이는 싸움과 승리를 알리는 전령사, 전우 그리고 메아리 정도가 아닌가. …… 형제들이여 너희들의 정신이 비유를 들어 이야기하려 들면, 항상 주목하라. 바로 거기에 너희들의 덕의 근원이 있으니. 그렇게 되면 너희들의 신체는 고양되고 소생하게 되리니. 신체는 자신의 환희로 정신을 매료시킨다. 정신으로 하여금 창조하는 자, 평가하는 자, 사랑하는 자, 그리고 온갖 사물에게 선행을 베푸는 은인이 되도록.”
“교육가들은 심리학에 홀려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아이들의 주목을 끌고 그들이 갖고 놀 수 있는 온갖 지할 데 없는 물건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만무하다. 딱 안성맞춤인 물건들이 말이다. 아이들은 성향상 특히 사물을 다루는 방법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쫓아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축, 정원 일이나 가사, 재봉이나 목공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에 끌리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쓰레기로 발생하는 것 중에서 아이들은 사물들의 세계가 바로 자신들에게, 자신들에게만 돌리고 있는 얼굴을 인식한다. 그것들을 이용해 아이들은 어른들의 작품을 모방하기보다 그냥 놀다가 만든 것을 통해 실로 다양한 종류의 소재 상호 간에 새로운, 비약적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런 식으로 그들만의 사물 세계, 커다란 사물 세계 속의 작은 사물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