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사회는 국가에 저항했다."
홉스가 국가를 정당화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즉 자신의 삶을 타인들의 공격과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개인들은 국가와 주권자를 만들기로 서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는 논증이 타당하려면 우선 모든 사람이 정말 서로 합의해서 국가를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데, 오늘날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이러한 원초적 합의에 대해 경험한 바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점은 오래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홉스가 말한 국가가 없는 상태, 즉 자연상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자연상태는 홉스에 따르면 자신의 생명조차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극도의 야만적 상태여야 한다. 그래야 강제력과 공권력을 가진 국가의 탄생이 정당화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과연 국가가 없는 인간 사회는 야만적인 사회였을까? 이런 의문은 우리를 클라스트르 Pierre Clastres (1934~1977)라는 정치인류학자의 통찰로 이끌어준다. 그에 따르면 가령 오늘날과 같은 국가 형식이 존재하지 않던 인디언 사회는 야만사회가 아니라 고도의 문명사회였으며, 이와 반대로 진정한 야만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국가사회라고 볼 수 있다. 클라스트르의 주장에서 우리는 국가나 권력이 가혹한 야만의 상징이며,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는 서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대적 사회, 각인의 사회는 국가가 없는 사회,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모든 신체에 똑같이 새겨진 각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다. 즉"너희는 권력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고 복종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다"라고. 우리와 분리되지 않는 이 법은 분리되지 않는 공간, 즉 신체 그 자체 이외의 어느 곳에도 새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미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끔찍한 참혹함을 대가로 그보다 더 끔찍한 참혹함이 출현하는 것을 막고자 한 이 야생인들(인디언들)의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심오함, 그것은 바로 신체에 새겨진 법은 망각할 수 없는 기억이라는 점이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La Société contre l'État≫
클라스트르가 보고한 것에 다르면 인디언들은 독립적인 자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잔혹할 정도로 심한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부족에서는 통과의례를 집행하는 사람이 통과의례를 거치는 젊은이의 어깨나 가슴살을 1인치 이상 잡아당겨 칼로 그 살을 뚫기도 했다. 그런데 이 경우 그 젊은이는 작은 비명소리조차 내서는 안 된다. 비명을 지르게 되면, 그 젊은이는 의혜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과의례에서의 비명은 그가 작은 고통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인디언 사회의 자유로운 성원이 되기에 아직 부적합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디언 사회에서 독립적인 성원으로 인정받게 된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누구나 통과의례의 상처를 몸에 지니게 된다. 이로써 보면 인디언 사회의 통과의례는 어떤 사람 혹은 소수의 지배자가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강제적 고문 행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인디언 사회의 통과의례를 관찰하면서 클라스트르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인디언들은 왜 이런 고통을 서로에게 부려고 했던 것일까? 왜 그들은 인디언 사회 모든 성원들의 육체에 동일한 상처와 흉터를 각인시키려고 했던 것일까? 오랫동안의 의문과 분석을 통해 마침내 클라스트르는 인디언 사회의 한 가지 핵심적인 비밀을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가 주목했던 것은 인디언들이 국가로 대표되는 권력관계나 차별 관계를 '문명'의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국가라는 것은 억압되어야 할 '자연', 눌러서 억제해야 할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능 혹은 권력욕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진정한 '문명'이란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독립적인 자유인들의 공동체로 사유되었다. 결국 이 과정을 통해 클라스트르는 인디언들의 통과의례가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행하는 상징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살 속으로 칼이 깊숙이 뚫고 들어올 때 그들이 어떤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던 것은 '문명인'으로서 살아가겠다는 데 대한 강렬한 동의였던 셈이다.
인디언들의 생각에 따르면 몸에 본능적인 탐욕과 권력욕이 배어들지 않게 하려면, 타인을 얕보고 무시하며 궁극적으로는 노예로 삼고자 하는 야만스런 심성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누구나 반드시 이런 엄청난 고통의 경험을 겪어야만 한다. 억누르고 있던 권력욕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올 때마다 인디언들은 자신의 살에 새겨진 흉터, 그리고 몸에 각인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단호한 얼굴로 다시 진정한 문명인으로 남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나는 권력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고, 복종의 욕망도 지니지 않을 것이다!" 인디언들에게는 약하다고 해서 강한 자에게 비굴하게 복종하고, 강하다고 해서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 자연, 혹은 야만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홉스의 국가 모델을 보았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문명이 아니라 약육강식과 같은 생생한 야만의 논리를 모았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에 대항했던' 인디언 사회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이제 클라스트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약육강식의 '경쟁'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결국 동물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일 수 있으려면, 인간은 강한 사람에게 복종하지도 않고 약한 자를 지배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유인의 의지, 그리고 이와 아울러 자신을 죽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자유를 빼앗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고한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 클라스트르가 찾아가 보았던 인디언들의 사회는, 아주 오래된 사회임에도 가장 문명이 발달했던 사회였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국가 체제에서 흔히 엿볼 수 있는 권위적 지배와 복종이라는 야만적 상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회가 바로 그들의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인디언 사회는 여전히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클라스트르의 정치 인류학적 연구는 인디언들이 살았단 야만사회가 문명적이었고 반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가 야만적이라는 걸 알려준다. 결국 그는 홉스가 아니라 루소의 손을 은근히 들어준 셈이다. '자연상태'는 분명 전쟁상태라는 건 옳았다. 그렇지만 그 전쟁의 대상은 동료 인간들이 아니라 국가라는 억압기구였던 것이다. 국가기구,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형식은 한 번 탄생하자마자, 놀라운 생명력과 지속력을 보이게 된다. 지배자라는 형식에 제정일치의 종교지도자, 왕이나 황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심지어 자본가가 들어와도 상관이 없다. 어쨌든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형식은 그 내용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유지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하면 지배와 피지배라는 국가 형식을 없애서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우리 인간은 "권력의 욕망을 지니지 않고 복종의 욕망을 지니지 않는" 강력한 자유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 대복에서 클라스트르는 마르크스의 테제 하나를 전복시키려고 한다. 1859년에 출간된 ≪정체경제학 비판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에서 마르크스는 말했던 적이 있다.
인간들은 불가피하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규정된 관계, 즉 그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에 주어진 단계에 부합하는 생산관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체 생산관계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토대를 구성한다. 이 토대 위에 법적이고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발생하고, 동시에 이 토대에 규정된 사회적 의식은 대응하게 된다. 물질적 삶의 생산양식은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지적인 삶의 일반 과정의 조건이 된다. ≪정체경제학 비판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경제적 토대는 사회 차원에서는 정치나 법률과 같은 상부구조를, 그릴고 개인 차원에서는 의식을 결정한다. 마르크스주의자나 부르주아 지식인이라도 누구나 받아들이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맞으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억압적 생산양식이 아니라 억압이 없는 생산양식으로 변해야만, 우리 인간은 자유를 회복할 수 있다. 어쨌든 상부구조는 하부구조가 결정하니 말이다. 그러나 클라스트르의 생각은 다르다. 억압적 생산양식이 저절로 자유로운 생산양식으로 변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억압적 생산양식을 없애는 것도 우리 인간일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우리 각자는 자유의 전사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는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나 개신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마르크스의 도식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핵심적 분할, 즉 노동 분할을 포함한 다른 모든 분할들의 기초가 되는 분할은 사물들에게 낮은 것과 높은 것이란 수직적 질서를 부과하는 분할이다. 군사적이든 아니면 종교적이든 권력을 잡은 사람들과 그런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구분이 핵심적인 분할이란 것이다. 정치적 권력관계는 경제적 착취 관계에 선행하고 그것에 기초를 제공한다. 소외는 그것이 경제적이기 이전에 이미 정치적인 것이다. 권력은 노동에 선행하고, 경제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에서부터 파생된 것이다. 국가의 탕생이 계급의 도래를 결정했던 것이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국가에 대항했던 인디언 사회를 연구하면서 클라스트르는 경제적 억압은 단지 정치적 억압의 파생물이라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하긴 당연한 일 아닌가. 복종하는 다수들이 있어야 그들을 피라미드나 만리장성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 공사 현장에서 노예로 부릴 수 있고, 혹은 공장이나 회사에서 노동자로 부릴 수 있다. 결국 노예에서 노동자로의 변화는 복종과 지배 양식의 변화, 혹은 국가 형식의 세련화일 뿐이다. 타율적 복종에서 자발적 복종으로 변한 것이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타율적이나 자발적이냐의 여부는 정신승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복종이란 정치적 태도뿐이다. 복종이 있으니 지배가 있고, 지배가 가능하니 복종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클라스트르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교훈이었던 셈이다. 누구도 지배하려고 하지 않고 누구의 지배도 받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소외에 맞서는 사장 원론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실천적인 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강령을 확고하게 따를 때, 어떻게 우리가 국가권력이나 자본권력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