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서양철학 그 가능성의 중심, 헬레니즘 철학
푸코 Michael Foucault (1926~1984)라는 현대 철학자의 중요성은 그가 권력의 지배라는 문제가 개체의 육체 혹은 내면에까지 집요하게 관철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말해 권력의 문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을 검열하는 자아의 부분과 검열을 당하는 자아의 부분 사이의 관계 문제로 확산된 것이다. 이제 자유를 쟁취하려는 인간의 투쟁은 어떤 국경선이나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그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이 싸움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가족, 학교, 매스컴, 감옥, 병원 등을 통해 권력은 집요하게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이란 생명체를 훈육시켜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의 어느 부분이 권력의 노예로 길들여져 있는지, 그리고 아직도 구너력에 포획되지 않은 나의 나머지 부분은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것조차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 생명체로써 개체의 차원에서 볼 때 어떻게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죽기 전까지 푸코가 고민했던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말년 저작인 ≪성의 역사 Histoire de la sexualité ≫ 세 권과 '콜레주 드 프랑스 Collège de France'에서 행했던 일련의 강의록들은 이러한 그의 관심을 잘 번영하고 있다. 그런데 권력으로부터 구성된 주체가 아니라 구성하는 주체를 꿈꾸면서, 푸코는 스토아학파 stoicism가 강조했던 파르헤지아 parrhesia라는 개념을 통해 자기 수양의 논리가 가진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된다.
철학이 하나의 삶의 형식이라는 사실은 고대철학의 세계에 관통하고 스며들어 있으며 지속되고 있는 파르헤지아라는 기능, 즉 용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기능이란 일반 도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철학적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로 어떤 것들의 포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인생의 선택이다.
≪주체의 해석학 L'Herméneutique du sujet≫
푸코에게 철학은 19세기 이후 대학에 포섭된 철학과라는 형식을 넘어선 것이다. 진리와 오류를 구분하는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 혹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의 여부다. 객관적인 척 진리와 오류를 구분하는 것으로 자신이나 세상이 바뀔 리 없다. 문제는 권력이나 자본과 같은 체제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그러니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파르헤지아는 바로 이것이다. 용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진실을 말한 사람은 내면의 회유도 극복해야 하고, 동시에 외적인 압력도 이겨내야 한다. 당연히 그는 체제가 마련한 많은 혜택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푸코의 말대로 파르헤지아는 우리에게 과거와는 다른 "특별한 인생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 계기인 셈이다.
푸코가 의지하고 있는 스토아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상징되는 고대 그리스 철학 사유 전통에 이어서 등장했던 철학 학파였다. 이 학파는 철학사적으로 헬레니즘 hellenism 시기에 에피쿠로스학파 Epicurean school와 함께 당시 철학계를 양분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와 같은 스토아학파의 사유가 없었다면, 아니 더 넓게 말해서 헬레니즘 철학의 전통이 없었다면, 생명정치 biopoliticis에 대한 푸코의 통찰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푸코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현상은 아니다. 알튀세르와 들뢰즈의 사유도 결국 헬레니즘 철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평생소원은 마르크스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그의 정치경제학 저작들에 철학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는 에피쿠로스학파의 우주 발생론에서 중요한 철학적 영감을 수용하면서, 마침내 '우발성의 유물론 matérialisme aléatoire'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들뢰즈의 사유도 헬레니즘 철학, 특히 스토아학파와 깊이 연루되어있다. 들뢰즈의 주저 가운데 ≪의미의 논리 Logique du sens≫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차이와 반복 Différence et Répétition≫과 함께 들뢰즈가 어떤 철학적 사유 전통을 따르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저작이다. ≪의미의 논리≫를 넘겨보면, 우리는 이 책이 결국 스토아학파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들뢰즈 식의 주석서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들뢰즈가 가장 깊이 영향을 받은 부분은 '세계는 물체들의 집합체이고 의미는 물체들의 마주침에서 발생한다'는 스토아학파의 발상이었다. 그에게 의미란 물체들 내부에 본질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들의 마주침을 통해서 사후적으로 출현하는 것이었다. 결국 스토아학파를 통해 들뢰즈는 자신이 모색했던 '의미 발생의 논리학'에 철학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던 셈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 가진 혁명성 혹은 새로움의 기원은 그들이 지금까지 철학사에서 무시되었던 헬레니즘 철학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굴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헬레니즘 철학의 부활은 현대 프랑스에서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영미권에서도 헬레니즘 철학을 새롭게 부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철학적 관심, 특히 인식론, 논리학, 언어철학, 그리고 심리철학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헬레니즘 철학의 관점들은 영미 철학자들에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지적 자극을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영미 철학자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던 것은 인간 정신을 물질적으로 동해하려는 헬레니즘 철학의 전통이었다. 플라톤, 기독교, 그리고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주류 서양철학 전통이 인간 정신을 물질과는 무관한 정신적 실체로 이해했다면, 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학파는 인간의 정신을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사유했다.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오늘날의 영미권 철학자들에게 헬레니즘 철학이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나 영미권의 헬레니즘 철학에 대한 관심은 사실 전문 철학자들을 넘어서 평범한 일반 사람들에게도 미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누스바움 Martha Nussbaum (1947~)과 같은 철학자를 대중적 스타로 만들었을 정도다. 자신의 수많은 주저 중 하나인 ≪욕망의 치유: 헬레니즘 윤리학에서 이론과 실천 The Therapy of Desire: Theory and Practice in Hellenistic Ethics≫에서 그녀의 헬레니즘 철학이 얼마나 현대인의 삶에서 중요한지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학파의 상이한 관점은 철학 전문가 이외에도 일반 사람에게 강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결국 이 두 입장은 세계 속에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학파의 독특한 개인주의적 실천철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계 전체 질서에 따르는 삶을 영위하라는 스토아주의의 실천철학을 따를 것인가?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실천철학적 전망이 우리에게 심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헬레니즘 시대나 지금의 시대가 모두 제국의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 사람들은 '팍스 로마나 Pax Romana' 속에서, 당시 말해 로마라는 정치적 권력에 의해 유지되던 제국의 시대에 살았다. 이와 유사하게 현대 서양사람들은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 속에서, 다시 말해 미국으로 상징되는 '자본=권력'이 지탱하고 있는 제국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제국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영위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헬레니즘 철학자들의 실천적 고뇌가 현대에도 반향을 일으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헬레니즘 철학이 동양의 사유 전통이 가진 철학전 전제들을 많은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정론을 거부하는 독특한 우주론을 피력했던 에피쿠로스학파의 생각은 왕충 王充 (27~100)의 존재론적 가정들과 유사하며, 개체적 삶의 향유를 강조한 에피쿠로스학파의 제안은 양주 楊朱(BC440?~BC360?) 혹은 장자 莊子 (BC369~BC289?)의 생명 긍정 논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한편 이와 달리 전체와 개체의 관계, 그리고 전체와의 조화가 가능한 삶을 위해서 개인의 수양을 유독 강조했던 스토아학파의 사유는 중국 위진魏晉 시대의 현학玄學이나 송나라 이후의 신유학新儒學의 관점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현학을 대표하던 왕필 王弼(226~249)은 세계를 어머니나 뿌리로 그리고 개체를 자식이나 나뭇가지로 비유하면서, 자식이나 가지를 보호하려면 어머니 혹은 뿌리를 보존하는 수양론이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유학의 대표자 주희 朱熹 (1130~1270)는 개체의 본성과 전체 세계의 이치가 동일하다는 '성즉리 性卽理' 테제를 내세우면서 전체와 조화된 개체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의 관점이 스토아학파의 세계관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