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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Sep 29. 2019

소통은 가능한가?

근대철학의 맹점, 타자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는 근대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 서막의 핵심부에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주체, 즉 코기토가 존재한다. 코기토는 사유하는 주체이기  이전에 의심하는 주체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의심은 낯선 곳에서 발생하는 정서다. 예수회 수도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데카르트가 암스테르담이란 당시 가장 번화했던 도시로 가지 않았다면, 그는 의심하는 주체 코기토를 발견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신이 지배하던 중세시대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나 있던 자유 도시였다. 그러기에 스피노자와 같은 범신론자도 이곳 암스테르담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도 중세적 질서가 지배하는 다른 곳에 갔다가는 사상의 자유는커녕 생명마저 부지하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바로 이곳 암스테르담 후미진 곳에서 데카르트는 당분간 머물게 된 것이다. 중세 기독교의 규칙이 적용되던 예수회 수도원과 그와는 전혀 다른 근대적 삶의 규칙이 통용되는 암스테르담 사이에서, 데카르트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절절한 자각에 이른 셈이다. 그러니 어떻게 진리에 대한 의심이 싹트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도시생활이 그렇듯이 암스테르담은 철학자에게 필수적인 익명성을 보장해주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도시인들은 타인의 사유와 행동에 대부분 무관심한 법이다. 새로운 사유를 꿈꾸던 데카르트에게 암스테르담이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번화한 암스테르담 거리, 그 누구도 신경 쓸 필요 없는 대도시의 생활은 데카르트에게 자유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그에게 과거 프랑스에서 느껴보지 못한 고독도 안겨주었다. 그래서일까, 데카르트의 키기토에는 자유로운 주체라는 느낌과 동시에 고독한 주체라는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1903년에 출간된 짐멜의 유명한 논문 <대도시와 정신적 삶 Die großstädte und das Geistesleben>에 등장하는 한 구절을 읽어보도록 하자.


좀 더 정신적이고 세련된 의미에서 대도시인은 사소한 일들과 편견들에 얽매이는 소도시인들에 비해 '자유롭다'. 대도시와 같이 큰 집당이 가진 지적인 삶의 조건들이나 상호 무관심이나 속내 감추기라는 태도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은, 대인의 자립성이 훼손되곤 하는 작은 집단에 속한 개인들이라기보다는 대도시처럼 인구가 극도로 밀집한 곳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일 것이다. 이는 신체적 거리의 가까움과 공간의 협소함이야말로 정신적 거리를 가장 잘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우글거리는 군중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장 잘 느끼게 마련이다. 물론 이것은 위에서 말한 자유의 이면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대도시만큼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반드시 그의 정서적 안정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대도시와 정신적 삶>


짐멜에 따르면 대도시라는 삶의 조건은 우리의 내면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로 표현되는 개인들의 자유이다. 시골 사람들을 규정하는 것이 '인격적 만남'이라면, 도시인들에게는 비인격성이 대부분의 만남을 규정하는 계기이다. '인격성'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상점 주인이 우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외상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인격적 만남이다. 반면 대도시의 편의점에서는 외상이 불가능하다. 편의점 점원과 우리 사이에는 그저 돈과 상품만이 오갈 뿐이다. 이것이 바로 '비인격적 만남'이다. 시골 사람에 비해 도시인들이 타인들의 삶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비인격성' 때문이다. 사실 이런 비인격성은 도시 생태학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일이 인격적으로 대응하기에는 대도시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만나는 모든 사람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도시인들은 금방 신경과민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도시인들이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이유도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속내를 드러내면 타인들이 아는 척하는 것이 여간 귀찮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죽은 애완견 때문에 슬픔을 표현했다고 해보자. 만나는 사람마다 애도의 말을 던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두 명이지 만약 100여 명 정도면 애도의 말을 듣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희로애락 등의 감정은 그저 속내에 묻어두는 것이 편한 일이다. 이처럼 도시인들은 자신의 속내를 웬만하면 털어놓지 않는다. 그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적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속내를 아는 척할 때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느낌, 자신이 벌거벗겨진 것과 같은 느낌은 자신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불쾌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서로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한 타자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서로 합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침내 인간은 도시에 살면서 시골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자유를 얻었다. 그렇지만 행복의 이면에는 불행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도시인들이 얻은 자유의 이면에는 고독이라는 치적인 질병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라는 냉담한 태도는 도시인들을 원치 않는 고독에 빠지도록 한다. 냉담한 태도를 지속하다 보면, 혹은 상호 무관심한 자유를 향유하다 보면, 도시인들에게는 자신의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인들의 사랑은 편집증적이다.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도시인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 그는 간만에 얻은 인격적 관계에 그야말론 올인하게 되니까 말이다. 마치 뚜껑이 열려 걷잡을 수 없이 샴페인을 쏟아내는 샴페인 병처럼 말이다. 그만큼 대도시에 살고 있어도 인간은 타인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상대방도 나처럼 자신의 속내를 쏟아낼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타자와의 소통이란 심각한 문제, 도시에서만 주로 발생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도시인들의 타자에 대한 반응은 이율배반적이다. 타자는 자신의 고독을 달래주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얻은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타자의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다. 근대철학의 서막을 알렸다는 점에서 코기토의 발견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제 신의 명령에 무반성적으로 따르던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신의 시대가 저물고 인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코기토는 고독한 사유 주체를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다.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주체로서 나는 지금 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안다. "저 여자는 멋지다". "미적분학은 너무나 힘들다" 등등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혹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안다. 문제는 타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코기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타자 본인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는 내가 타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가 자유롭게 생각하듯이 타자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타자가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 전혀 다른 선택,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찌 보면 매우 귀찮고 불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자와 단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혼자 힘으로 자신의 삶을 육체적인 차원에서나 정서적 차원에서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법이다.


어찌 보면 데카르트가 코기토를 발견하자마자, 근대 철학계가 타자와의 소통이란 문제를 떠맡게 도니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독한 사유 주체들은 서로 무관심에 방치되거나 아니면 격렬한 갈등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철학적으로 홉스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등이 사회계약의 문제를 논의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타자가 원하는 것, 혹은 생각하는 것이 나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계약을 통해 나와 타자가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걸 확정할 수 있다. 결국 타자의 속내를 완전히 규정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면, 사회계약론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모든 계약이 그렇지만, 항상 약속 불이행의 가능성은 존재하는 법이다. 나도 그렇지만 타자도 맺어진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원초적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을 맺는 것도 주체의 자유이고, 그것을 파기하는 것도 주체의 자유일 뿐이다. 결국 계약은 타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일 수는 없다. 우리가 타자와의 소통이란 문제를 사회계약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민했던 철학자들을 살펴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데카르트와 함께 대륙 합리론의 삼총사라고도 불릴 만한 스피노자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이다. 두 철학자의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제안했던 논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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