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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Nov 16. 2019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인가? [헤겔]

"결혼과 가족은 불완전한 사랑을 완성한다."


사랑과 관련된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헤겔은 사랑과 관련된 우리의 일상적인 입장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시민사회를 전제로 사랑과 아울러 가족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사유했다. 자유로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족을 구성한다. 마침내 두 사람에게서 아이가 생김으로써 하나의 완전한 가족이 완성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실천하고 있는 사랑과 결혼의 메커니즘이다. 바로 이 메커니즘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했던 철학자가 바로 헤겔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현재 통용되는 사랑과 결혼을 긍정하려는 사람들은 헤겔에게서 든든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현재 통용되는 사랑과 결혼 양태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헤겔의 논리를 먼저 극복하지 않고서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내놓기 힘들 것이다. 이제 직접 사랑의 감정을 헤겔이 어떤 식으로 해명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사랑을 이루는 첫 번째 계기는 내가 오직 나만을 위한 독립적인 인격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스스로를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으로 느낀다는 데 있다. 두 번째 계기는 내가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하고 이 타자 안에서 인정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역으로 그 타자도 역시 내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을 얻는다는 데 있다.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헤겔은 사랑을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그는 사랑에 빠진 우리의 내면을 분석한다. 어떤 타자와 마주치자 나는 더 이상 홀로 살아가서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상대방이 없다면 자신의 삶이 불완전함에 빠질 것이라는 느낌이 밀려온 것이다. 이제 곧 타인과의 사랑이 시작된다. 헤겔은 이런 우리의 내면을 "내가 오직 나만을 위한 독립적인 인격이기를 바라지 않게"되는 상태라고 묘사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 헤겔은 나만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게 된 행복한 장면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타자가 이제 자신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도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타자도 내가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내 마음 안에 자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와 타자는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짚어보아야 할 점은 헤겔이 너무도 쉽게 타자의 타자성, 혹은 타자의 자유 문제를 처리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헤겔의 사례에서도 타자는 나를 사랑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것 역시 타자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타자가 나에 대한 사랑을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사태이기도 하다. 이런 위험 때문이었는지 헤겔을 서둘러 연애를 마치고 결혼으로 이행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렇다면 이제 결혼을 통해 사랑의 비극, 즉 타자가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도 있는 자유의 가능성을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헤겔도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부부 사이의 아이 문제까지 역설하게 된 것이다.


부부 사이의 사랑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사랑의 감정이 실체적 통일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이 통일은 아직 아무런 객관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는 자녀를 통해 비로소 이런 객관성을 갖게 되며 또한 바로 이들 자녀를 통해 결합의 전체를 목도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통해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자녀를 통해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마침내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사랑을 직감하게 된다.
≪법철학 강요≫


학샐들과 함께 있는 헤겔. 프란츠 쿠글러의 그림 (1828)


헤겔은 "부부 사이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역으로 두 사람의 주관적인 내면, 혹은 사랑에 깃든 자유에 대한 헤겔의 두려움을 직감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헤겔이 지향하는 객관적인 사랑이란 것이 결국 타자의 자유를 부정하는 형식을 띠게 되리라는 점 역시 예측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헤겔이 말한 객관적 사랑의 정체는 바로 자녀를 낳는 행위로 드러난다. 헤겔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순간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해 강한 사랑을 느껴서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그 결과 자식이 태어난다. 헤겔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을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남편, 아내 그리고 자식 사이의 관계가 바로 정과 반 그리고 합이라는 변증법적 논리의 구체적인 사례라는 걸 알려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어지는 헤겔의 리를 좀 더 살펴보자.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듯이 남편과 아내는 자식을 사랑할 것이다. 아내는 자식을 사랑한다. 그리고 남편도 자식을 사랑한다. 그런데 자식은 바로 아내와 남편 사이의 사랑이 객관화된 존재이다 그러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남편은 결국 아내를 사랑하는 셈이고 아내 역시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남편을 사랑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 여기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을 말하는 것도 어폐가 있는 일이다. 사랑에는 본질적으로 자유가 개입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는 자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경우 자유의 감정보다는 동정, 연민, 의무 등등 자유와 무관한 감정이 부모와 자식 사이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주변을 보면 부모도 자식을, 그리고 자식도 부모를 사랑한다고 너무나 쉽게 말한다. 경제적이거나 정서적으로 자식이 부모의 보호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한마디로 말해 자식에게 독립과 자유가 주어질 때가 온다. 오직 이런 조건에서만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독립을 달성한 자식들은 과거 부모들이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것처럼 늙은 부모들을 보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우 늙은 부모들은 자식들의 보호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당연히 이때 지배적인 감정은 동정, 연민, 의무감 등등과 같은 사이비 사랑의 느낌일 것이다.


어쨌든 자식을 사랑한다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본 헤겔의 가족 변증법은 정말 타당한 것일까? 헤겔은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사랑을 직감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헤겔의 이 표현은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과거의 사랑을 직감한다"라고 바뀌어야 할 것이다. 분명 육체적 관계를 맺었을 때,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했을 가능성은 높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일일 뿐이다. 자식을 낳은 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자식은 사랑의 객관적인 모습이라기보다,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두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두는 족쇄로서 기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결혼과 자식은 두 사람의 사랑을 보장해주는 어떤 확실한 역할도 수행할 수 없다. 다만 결혼과 자식은 타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일시적으로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동안에조차 내가 관계하는 타자는 더 이상 내가 사랑했던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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