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는 말의 내적인 논리
만일 내가 타자에 의해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사랑받는 자로서 자유로이 선택되어야 한다. 알다시피 사랑과 관련된 통상적인 용법에 따르면 '사랑받는 자'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 선택은 상대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 사실 사랑에 빠진 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존재와 무≫
연애할 때 발생하는 호기심 curiosité의 법칙을 간단하게 요약하려면 그것은 '눈결에 본 연인'과 '다가가서 애무한 연인' 사이에 놓여 있는 '차이의 최대 le maximum de d'écart'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옛날 창녀 집이라고 불리던 곳의 여인들, 아니 고급 창녀들마저도 (그녀들이 고급 창부라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다지 이 쪽 마음을 끌지 않는 것은, 그녀들이 다른 여인만큼 아름답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탓이다. 획득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그녀들이 벌써 내맡기고 있는 탓이다. 이것은 승리의 획득이 결코 아니다. 이 경우 차이 écart는 최소이다. 창녀는 거리에서 벌써 미소를 지어오는데, 나중에 단둘이 되었을 때에도 그런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각가다. 여인이 우리에게 나타낸 모습과 전혀 다른 조각상을 그녀에게서 얻고자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갇힌 여인 La Prisonniè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