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빛난다』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어느 날, 삶을 채우는 가치관과 생각들이 무無가치, 무無의미하게 느껴지게 될 때, "허무하다"라고 말할 때가 있다.『모든 것은 빛난다』를 집필한 두 철학교수는 허무주의를 '선택에 참다운 동기가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무엇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확실한 지침이 없다는 것이다. 지침을 세웠다 한들 어떠한 판단 근거로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는지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선택의 근거에 대해 판단력을 기르지 못한 채 무기력에 사로잡혀있다면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은 허무함에 빠질 것이다.
책의 도입부는 선로로 빠진 청년을 구하기 위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선로로 뛰어든 웨슬리 오트리 이야기로 시작된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지하철 영웅'으로 도배되고, 경찰철장은 '오트리를 본받아 행동하라'라고 전한다. 하지만 정작 오트리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영웅적 행동을 부정한다. 두 저자는 오슬리의 '자신의 선택에 대한 꽉 찬 확신'이 우리를 허무주의의 늪에서 꺼내준다고 전한다.
하지만 선택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선 거리가 멀다. 오히려 망설이는 것, 주저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수많은 선택지와 선택의 자유는 과연 우리 삶을 편하게 해줬을까? 되려 선택의 짐을 안겨줬을 뿐이다. 선택의 짐이란 무엇일까? "돈까스를 먹을까?, 김치찌개를 먹을까?", "이과를 갈까?, 문과를 갈까?", "교회에 다닐까?, 절에 다닐까?", "직장을 다닐까?, 사업을 할까?" 이렇게 사소한 고민부터 중대한 결정까지 선택의 짐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무겁게 누르는 듯하다.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항상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안 좋은 결과에 무기력하게 뻗어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어떤 선택지에서 어떤 근거로 그 선택을 했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동의 유의미한 차이는 어디서 따질 수 있을까? 따지다 보면 가장 궁극적이면서 기본적인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나는 무슨 근거로 이 선택을 했는가?" 이런 차이야말로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하는데 필수적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런 면에서 행동에 대한 근거를 탐색하기 위함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하루에서 글감을 찾고 경험을 확장시켜 나만의 말투로 번역하는 행위이다. 특정 사건에 대해서 나의 반응은 어땠는지,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했는지, 감사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되는지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좋고, 안 좋고를 떠나 꽤나 의미 있던 하루였음을 깨닫게 된다. 유의미한 차이를 찾는 것, 그것이 우리를 허무주의에서 구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