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없는 회피보다, 의미 있는 불편을 선택하는 삶
고통은 선택지가 아니라 전제다
우리는 말한다.
"고통 없이 살고 싶다."
하지만 삶은 말한다.
"고통은 선택지가 아니라 전제다."
중요한 건 하나다.
무엇을 위해 고통받을 것인가.
하루를 시작할 때 묻는다.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견딜 것인가?"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붙잡고 있다.
이 문장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고통을 피하려는 삶에서
고통을 의미 있게 쓰는 삶으로.
선택하지 않은 고통은 무의미하다
고통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내가 선택한 고통.
내가 회피한 결과로 찾아온 고통.
전자는 방향이 있다.
후자는 방향을 잃는다.
전자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후자는 나를 무너뜨린다.
나는 한때,
고통을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편안한 선택,
익숙한 루틴,
안전한 관계.
그땐 그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더 깊은 공허함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고통을 피하는 삶은
결국 더 큰 고통을 초대하는 삶이라는 것을.
고통은 삶의 나침반이다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고통받을지를 선택한다.
글을 쓰기 위해 고통받는다.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 고통받는다.
나만의 브랜드를 세우기 위해 고통받는다.
이 고통은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정렬시키고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고통은 나를 깎아내리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조율하는 리듬이 된다.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최근,
한 유명 온라인 코스 플랫폼에서 강의 제안을 받았다.
좋은 기회였지만
동시에 나에겐 고통의 시작이다.
카메라 앞에 앉는 일.
말의 흐름을 끊지 않고 전달하는 일.
나는 불편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분명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강의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고통은 조용히 사라졌다.
불편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방향이 생기자
그 고통은 의미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영상 촬영이 어색하다.
하지만 고통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을 선택한다.
그것이 내가 삶을 설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정렬시키는 것이다.
- 정각(正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