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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은 Jan 26. 2020

작업여행에 필요한 짐들 feat. 애니메이션 작업방식

nomad artist_노마드 아티스트_3






수작업 vs 디지털작업 

개인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후 1년 동안은 매일 작업/표현 방식을 고민했다. 중학생 때부터 디지털 작업 중심의 작업을 하던 내가 수작업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희소성의 이유가 가장 컸고 디지털 작업보다 집중력이 높아지는 느낌적인 느낌, 작업 속도가 디지털 작업보다 빨랐으며 선이나 채색에서의 러프한 느낌을 좋아해서다. 그리고 페이퍼 오브제를 직접 만들고 촬영하는 단계에서 생기는 레이아웃의 모호함이 좋았다. 아무리 레이아웃에 스케치를 디테일하게 한들 사진 촬영을 할 때 1cm만 이동해도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촬영 단계에서 생기는 랜덤-모호-막연-불확실한 레이아웃과 조명에 따른 색감의 차이, 입체감과 깊이감이 주는 공간감이 작업 과정의 단계에서나 결과물을 볼 때 자극과 흥미진진함을 주었다.     





(기존의 작업 과정)





수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료 목록  


장비: 맥북, 아이패드, 카메라, 실루엣 기계, 조명 4(포맥스 지속 조명, 집중 조명, 루메나 플러스, 테이블 스탠드), 조명 삼각대, 카메라 삼각대

재료: 피그마 마이크론 005 펜, 접착 풀, 화이트 물감, 수채화물감, 아크릴 물감, 팔레트, 물통, 붓, 앞치마, 칼, 가위, 자, 송곳, 글루건/심, 점토, 철사, 테이프, 커팅 매트, 도화지, 접착 폼보드    





어느 곳에서나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 


나는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데 나무껍질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들여다보곤 한다. 그래픽-후반 작업보다 중간인 수작업 단계에서 시간을 들이고 작업강도를 높이고 완성도를 위해 장비에 투자했다. 작업에 필요한 장비/재료들을 최소로 간소화시켜도 캐리어 24인치 1개를 꽉 채우는 짐이었다(게다가 일반 짐보다 훨씬 무겁다). 물건과 장소,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작업을 하고 싶어서 작업 프로세스를 줄여볼까 하니 부족한 단계에서 보이는 낮은 완성도가 걸림돌이었다. 그렇게 계속 작업을 하다가 작년에 새로운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1분 30초 정도의 캠페인 홍보 애니메이션이었다. 피드백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고 다른 때보다 '수정 가능'에 집중해서 작업해야 했다. 그래서 배경 세트와 오브제와 캐릭터를 한 번에 촬영해서 디지털 작업을 최소화하는 기존의 과정에서 한 번에 촬영은 하되, 레이어를 분리해서 디지털로 합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사실 레이어를 나누면 더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촬영에 적은 시간을 쓰고 디지털로 만지는 것이 훨씬 시간이 절약됐다. 나에게는 이 방식이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시간이 적게 들었으며 아주 디테일한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았고, 완성도 부분에서 더 큰 만족도를 주었다. 하지만 촬영 과정에서 생기는 빛의 따뜻함이나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같은 손으로 만진 느낌이 많이 나는 긍정적인-의미의 키치함(내가 좋아하는 수작업 세트의 느낌)이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올 디지털 작업이 가능해야 어디에서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디지털 작업 


sns를 보면 레트로풍 일러스트와 레트로 인쇄인 실크스크린이나 리소 인쇄를 자주 접할 수 있다. 80년대 레트로풍의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작가님에게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작가님에게 아날로그 선의 느낌이 나도록 블랙에 다른 색들을 섞고 질감도 많이 만진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날로그의 느낌이 나도록 디지털 작업의 여러 단계의 과정을 더해서 과정을 늘린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현재에서 아날로그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작업에서는 단계를 늘리고 시간을 더해서 아날로그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아날로그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미완성-랜덤-모호-막연-불확실한 


더 익숙하고 끌리는 느낌들이다. 벡터의 깔끔한 선보다는 울퉁불퉁한 스캔한 선이 좋고 단색의 원톤보다 그라데이션이, dslr의 선명함보다는 필름 카메라의 그레인이, 매끈한 화면보다 질감이 살아있는 종이가 더 좋다. 이러한 '아날로그적' 느낌들이 좋지만 정지된 것보다는 움직이는 디지털 미디어 작업을 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의 작화/배경 과정에서 스캔한 선, 그라데이션, 그레인, 종이 질감을 더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정말 스캔한 선을 사용하려면 3 콤마 애니메이션 30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00장 이상의 작화 용지가 필요하며 자, 연필, 샤프, 지우개와 같은 도구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디지털 작업에서 선을 만져 스캔의 느낌을 내보기로 했다. 그라데이션의 경우에는 캐릭터에서 채색하기엔 한 프레임씩 손봐야 하기 때문에 예상한 시간을 초과할 것이다. 대안으로 배경이나 디지털 촬영 과정에서 사용하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했고, 그레인이나 종이질 감은 쉽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을 토대로 지금 작성하고 있는 시나리오의 한 두 장면 정도를 원화-기획해보기로 했다.    





이제 다시 작업-여행을 위한 짐을 챙겨보자


맥북 프로 15인치와 와콤 망가 11인치(경량 태블릿) 아이패드 프로 3세대와 펜슬, 스토리 보드를 작업할 크로키 북과 샤프와 지우개, 펜 끝!
5년 동안 실행해왔던 작업방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벌써부터 허전하며 다시 불안해졌고 익숙하지 않은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해서 스트레스도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작업방식을 바꾸는 이유는 더 오랫동안, 행복하게, 가볍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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