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로마의 문명, 특히 토목과 건축 기술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조물이 세워지는 계획과 역학의 원리, 시공 과정의 공정 관리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기에, 지금부터 거의 2,000년 전에 세워진 각종 시설물들을 보노라면 로마 시대의 건축과 토목기술은 '불가사의' 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중에서 먼 곳에서 도시로 물을 끓어 오기 위한 수도교(水道橋)는 로마 토목기술의 진수라고도 할 수 있다.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세고비아에는 로마의 수도교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세고비아는 수도교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지만 여행 루트에 포함시킨 이유는 바로 수도교를 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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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2일 (火) 세고비아
세고비아는 아름다운 소도시이다. 마을 전체가 중세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물론 유럽에는 그런 마을이나 도시가 한 두 곳이 아니다. 세고비아가 아름다운 이유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데, 로마 시대의 유적부터 르네상스 이후의 건축물까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양식,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오후 4시 30분에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주요 Point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버스에서 내려 여행 안내소로 가는 길 옆에 있는 오래된 교회가 눈에 띈다. 전체적인 조형미가 이쁜 교회이다. 지도를 보니 [산 미얀 성당]이라고 되어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교회라고 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 촬영. 여행을 하다 보면 디지털카메라가 발명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필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시야를 압도하면서 나타나는 수도교, 그러나 자세한 구경은 뒤로 미루고 마을 끝에 위치한 '알카사르'를 먼저 보기로 했다.
알카사르(Alcazar)는 성(城)을 의미하는 스페인 단어이다. 'Al'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스페인어와 아랍어가 혼합된 단어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디즈니의 만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이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유럽 스타일의 성채에 아랍 특유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성이다.
이 알카사르는 스페인 재통일 전 카스티야 왕국의 왕실이 이용하던 성으로 이사벨 여왕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중세 시대의 무기와 고문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 방들의 천정이 화려하면서도 정교하다. 근대 이전 유럽의 궁전 건축물을 보면 대개 벽면보다 천정 디자인과 공사에 더욱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는데, 분명 그 바탕에는 어떤 종교적, 사상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에 비해 우리 고건축의 천장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구조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중앙탑 꼭대기 옥상에 올라가면 세고비아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건축물들이 모여 있지만 전체적인 색상과 스카이라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또한 '건축적'이었다. 2013년도 11월에 탑 위에서 1400년대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착각에 잠시 빠져 본다. 어디에선가 백마 탄 기사가 공주를 구하러 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릴 법하지 않은가?
거리 이 곳 저 곳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세고비아는 새끼돼지를 재료로 한 요리인 '코치니요'가 유명하다.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 먹어 보기로 했다. 수도교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코치니요로 점심 식사. 맛이 소문만큼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맛에 대한 감각과 기준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 다를 터이니, 스페인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서 우리에게도 맛이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 맛을 떠나 지방의 독특하고 고유한 음식을 먹어 본다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드디어 세고비아 여행의 목적, 로마 수도교를 찬찬히 볼 시간이 되었다. 수원지에서 세고비아까지 16Km 거리를 물을 끌어 오는 역할을 했던 수도교는 그 시공상의 정밀함이 감탄을 일으키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1) 중력에 의해 물이 흘러 와야 하므로 수원지와 도착지의 해발 높이 차이를 정확히 측정해야 한다. GPS는커녕 고도계도 없던 2,000년 전에 16km나 떨어진 두 곳의 고도 차이를 어떻게 측량했을까?
2)수도교 물길의 경사가 급하면 수원지가 상당히 높아질뿐더러 물 흐름을 관리하기가 곤란하고, 너무 완만하면 물이 잘 흐르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다. 수도교는 경사도 40분의 1로 시공되어 있다. 물의 흐름에 가장 적절한 경사도라고 한다. 40분의 1이면 육안으로 보기에 거의 수평이다. 16km라는 거리를 어떻게 그 경사도를 유지할 수 있는 측량을 하였을까? 산도 지나고, 들도 지나고 시내도 지났을 그 먼 길에...
3) 세고비아의 수도교는 최대 높이가 28m 정도 된다고 한다. 접착재인 모르터도 사용하지 않고, 어떤 철물도 사용하지 않은 채 돌과 돌의 이음과 맞춤만으로 기둥과 아치를 형성하여 지금까지 2,000년 동안 그 형태를 완벽히 유지하도록 견고하게 시공한 기술의 바탕은 무엇일까?
기계적 장비와 컴퓨터가 없으면 설계와 시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요즘의 기술자들이 볼 때에 로마의 수도교는 '불가사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4) 기술적 판단을 떠나서도 수도교는 그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건축 조형 디자인의 요소인 스케일, 균형, 조화, 리듬, 변화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토목 구조물이자 건축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느새 마드리도로 갈 버스에 탑승할 시간.
클래식 기타의 위대한 작곡가 겸 연주가인 세고비아 때문에 그 이름마저 친근한 세고비아 투어를 마무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