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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비벤시아의 나라 스페인 - 03

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by JeongWon Kim

03. 코르도바 - 메스키타 (MEZQUITA)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기를 흔히 '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20대는 인생의 꽃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웬만하면 90살 이상 사는 세상이 되었으니, 인생의 꽃은 30대라고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막상 20, 30대 청년들은 자신들의 시기가 빛나는 꽃과 같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의 20대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 맥락에서 코르도바는 스페인 콘비벤시아의 꽃이다. 이슬람 후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700년 동안의 오랜 세월을 그 왕조의 수도 역할을 했으니, 코르도바는 그 기간 동안 정치, 경제, 교육 - 문화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중세 시대, 유럽은 아직 문화적, 학문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코르도바에는 무려 100만 여 권의 장서를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고 길거리에는 가로등까지 있던 인구 50만 명의 대도시였다고 한다. (당시 - 10세기쯤에 유럽에는 3만 명 이상의 도시가 많지 않았다고 하니 코르도바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알 수 있다.) 당시의 모든 문화와 문명이 코르도바에서 찬란한 꽃을 피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코르도바 도서관에서 보존되고 번역된 그리스의 철학과 고전들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르네상스를 촉발하는 요인이 되었으니 코르도바는 또한 유럽 근대 문명의 요람이라고 할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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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3일(수) ~ 14일(목) 코르도바


여행 3일 차, 마드리드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코르도바에 도착. 고속열차 운임이 상당히 비싸다. 1인 당 10만 원이 넘는다. 여행 초반의 비용이 예산보다 초과되어 살짝 걱정과 긴장이 생겼다. 하늘이 잔뜩 흐린 것이 곧 비라도 쏟아질 것 같다.

다행히 기온은 한국의 초가을 정도,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걸어 다니기에 좋은 날씨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카메라를 챙겨 들고 구글 지도의 편리함에 고마움을 느끼며 곧바로 1차 목적지 메스키타(Mezquita)로 향했다.

호텔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중세의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가의 가로수는 바로 오렌지 나무, 가지마다 탐스러운 오렌지가 주렁주렁. 이런 오렌지는 아무나 따서 먹어도 괜찮은 것이지 궁금해졌다.

몇 개의 골목을 돌아가니 드디어 메스키타의 외벽과 탑이 눈에 띄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 메뉴는 스페인에서 꼭 먹어 봐야 할 '하몽' 요리. 돼지 뒷다리를 발효시킨 것이라는데, 처음에는 짜기만 하고 별 맛이 없는 듯하였으나, 먹을수록 자꾸 손이 가게 하는 어떤 끌림이 있는 음식이었다. 비용을 절약해야 해서 요기만 간신히 때우는 것으로 점심 식사는 끝.


메스키타 (Mezquita - 이슬람교 사원, 영어의 모스크(Mosque)와 같은 말)


"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어느 분이 한 말이지는 잊어버렸지만, 학창 시절에 처음 들은 후로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말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를 보면 그 의미가 확실하게 새겨진다.

"건축은 공간적 감동이다" 이 말 또한 메스키타를 보면 수긍이 간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면, 메스키타의 외벽과 모서리에 자리 잡고 있는 탑이 눈에 띈다. 이국적 모습이라 흥미는 있어도, 그리 감동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습이다. 대규모 모스크라서 커다란 광장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조금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골목길이 좁아 사진의 앵글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

코르도바 메스키타 입구 골목길


그러나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안뜰에 질서 정연하게 도열하고 있는 오렌지 나무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너무 촘촘하지도 않고 너무 한산하지도 않게 적당한 간격으로 줄 지어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안뜰을 둘러싼 외벽, 건축물과 잘 어울렸다. 보통은 넓은 공간인 외부에서 내부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순서인데, 이 곳 메스키타에서는 좁은 골목길에서 넓은 안뜰로 들어오게 되어 있느니 그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_DSC0930.JPG 메스키타 오렌지정원. 바닥 수로의 디테일도 훌룽하다.

자세히 보면 나무들 마다 물길을 해 놓고 물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해 놓아서 나무에 물을 주기가 편하게 해 놓았다는 것이다. 아랍 문명의 물을 다루는 지혜와 기술이 참 대단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그 치수 설계의 진수를 볼 수 있었다)



안뜰, 오렌지 정원을 둘러보았으면 이제 메스키타의 내부를 볼 차례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사진으로 보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내부로 들어 선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감탄사. 터키의 아야 소피아에 들어섰을 때와 같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감탄을 표현한다.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제의 공간이 주는 스케일과, 줄 지어 늘어선 기둥과 아치들의 리듬감,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기둥들의 모습이 주는 일종의 신비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건축적 감동을 주었다.

메스키타 내부
메스키타 내부
고딕식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한 부분

메스키타라는 단어 그대로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되었을 때에는 2만 5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정도로 대규모 공간이다. 건축의 양식은 이집트, 로마, 중동의 양식이 혼합된 특이한 형식이다. 그래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국적 매력을 가지고 있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콘비벤시아'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그릇이다. 건물 자체가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가톨릭) 문화의 공존을 보여 주고 있다. 원래 기독교 교회였던 건물이 모스크로 확장 개축되었고, 16세기, 레콩키스타 이후에 다시 기독교 교회로 변경되었다. 건물 내부 중앙부로 다가서면 갑자기 분위기가 고딕 성당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그리 어색하지도 않고 저급하지도 않다.

워낙 넓은 실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가 약간 뻐근하다. 잠시 좌석에 앉아 생각해 본다. 이 곳에서 불었던 콘비벤시아의 공감이 현대에도 다시 널리 퍼지면 좋지 않을까? 극단적이고 잔인한 "IS"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문화적 번영을 위해서는 3대 일신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다시 서로 존중하고 관용으로 공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잠시 쉬었다가 아쉬운 마음을 남겨 놓고 다음 목적지인 '로마 다리'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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