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메스키타 관람을 마치고 로마 다리 쪽으로 난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걸어갔다. 하늘의 구름이 더 짙어졌다. 그러나, 기분 좋은 바람이 살짝 불어 나그네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코르도바는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이다. 코르도바를 감싸고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은 강폭에 비해 유량이 풍부한 강이다. 그래서 이미 로마 시절에도 도시로 번성했다고 한다. 로마의 뛰어난 문필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가 바로 이 코르도바 출신이다. 세네카를 배출하였다는 것은, 그때도 이미 학문이 융성했다는 것이고, 학문이 융성했다는 것은 경제와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코르도바는 인문지리적으로 좋으면서도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이슬람 세력이 그들의 수도로 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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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다리.
메스키타에서 골목을 따라 강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로마 다리'가 보인다. 이름에 '로마'가 붙었지만, 로마 시대에 건설된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로마 시대에 처음 축조된 후로 여러 차례 중수, 리모델링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의 모양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테베르 강의 다리를 본 땄다고 한다.
어쨌든, 중세 시대에 건설한 석조 교량이 지금까지 튼튼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살펴보면, 구조역학과 유체역학의 원리를 잘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현대적 역학 체계가 없었겠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론에 의해 설계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교각의 모양이 하류 쪽과 상류 쪽이 다르다. 유량이 많은 계절에 거칠게 달려드는 물살을 그대로 맞이해야 할 상류 쪽 교각은 그 물살의 힘을 분산하기 위해 삼각형 모양을 취하였고 하류 쪽 교각은 와류 현상을 줄이기 위해 원형으로 설계하였다. 상판을 받치는 구조는 가급적 넓은 스팬을 유지할 수 있는 아치구조이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적 건축 양식이 성행할 때에 "기능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름답다."라는 모토가 있었다고 한다. 로마 다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센 물살을 이기며 인마의 통행이 안전해야 된다는 구조적 기능이 그대로 표현되었기 때문이겠다.
남쪽으로 다리를 건너가면, 다리 끝 부분에 탑이 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칼라오라의 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한 때 코르도바에서 공존하며 번영하였던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관련 박물관이라고 하나 그 내부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 탑보다 내 시선을 끈 것은 강물을 취수한 것 같은 시설물이었다. 그 옛날에도 강물을 기계적으로 취수하여 도시의 식수와 용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하류 쪽, 알카사르 방향으로 강둑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강을 지키던 진지 비슷한 것들과 함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커다란 물레방아가 보인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인데, 이곳에서 로마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그림이 잘 나온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로마 다리 관련 사진 중에서 이 위치에서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여행 중에 소박하면서도 좋은 장소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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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巳足)
옛날의 한양, 서울의 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청계천에는 여러 다리 또는 교량구조물이 있었다. 그중 오간수문(五間水門)이라는 구조물의 옛 사진을 보면 그 교각과 아치의 형태가 로마 다리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기능에 충실하면 형태가 같아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이다. 오간수문은 조선 시대 때 건설된 것으로 그 위로 흥인문(동대문)과 광희문을 잇는 성곽이 지나가기 때문에 무척 튼튼한 교량이 되어야 했다.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지금은 흔적도 없다. 안타깝고도 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