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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비벤시아의 나라 스페인 - 05

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by JeongWon Kim

05. 코르도바 - 알카사르

스페인에는 알카사르가 많다. 알카사르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궁 또는 성채를 뜻하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도시에는 으레 알카사르가 하나쯤은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알카사르가 각 도시에서는 고유명사화되어 그냥 알카사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같은 공식적인 명칭은 있을 것이다) 코르도바의 알카사르는 바로 하루 전에 보았던 세고비아의 알카사르와는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 안에 서린 옛날이야기와 함께 건축의 조형성과 공간의 아기자기함, 그리고 물을 이용한 조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루 종일 머무르며 찬찬히 보고 느끼고 마음에 담아 오고 싶은 곳이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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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의 알카사르는 수평적 문화의 콘비벤시아 뿐만 아니라 수직적 역사의 콘비벤시아도 이루고 있다고 생각된다. 고대 로마 때부터 번성했던 곳이었던 만큼, 알카사르 부지는 로마 시대, 그 후의 게르만족인 서고트의 지배 시대 때에도 중요한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카사르는 로마의 유적지 위에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가 세운 궁전을 레콩키스타로 이 지역을 탈환한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4세 왕이 14세기에 개조하여 궁전으로 사용한 곳이다. 가톨릭 국가의 궁전으로 사용되었지만 아랍식 정원과 각종 건축 양식들은 상당 부분이 유지되었고 활용되었다. '물의 정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아랍풍 정원 내에는 로마 시대의 유물들이 장식품으로 비치되어 있다. [로마-중세 초기 게르만 -이슬람 - 가톨릭 스페인]을 관통하는 역사와 문화가 한 곳에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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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을 건축하되 옛 유적, 유물을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알카사르 내부 한쪽에는 옛 건물 터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심지어 어느 회랑에는 사선으로 지나가는 성벽의 일부가 있었으며, 작은 정원의 한 쪽에는 로마 시대의 것이 분명한 벽체의 일부가 장식물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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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 보는 유적, 유물들은 알폰소 왕이 성을 재건하던 시대에는 없었으나,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발굴된 것들을 전시해 놓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그 성터가 여러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탑 위에 올라가서, 알카사르 전체의 모습을 감상했다. 중세 시대 성채와 탑, 그리고 스페니쉬 기와로 덮인 지붕들, 건물 사이의 작은 정원과 건물들의 전면에 있는 넓은 '물의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한 것들이 로마 다리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모습이다.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이 축출된 후에도 그 건축양식이 남아 후기 중세 시대에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이는데, 그를 [무데하르] 양식이라 한다. 코르도바의 알카사르는 무데하르 양식을 일부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도시들의 대부분의 알카사르는 무데하르 양식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데하르 양식은 다음 목적지인 세비야나 그라나다, 톨레도 등에서 자세히 보기로 하자) 무데하르 양식은 건축에서의 콘비벤시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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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방을 구경하고 복도와 회랑을 빠져나오면 '물의 정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대지의 경사도를 활용하여 물길을 통제하여, 흐르고 고이고 내뿜는 물과 그를 둘러싼 화초와 수목, 또 배경이 되는 건축물 등이 조화 속에 잔잔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사진 찍을 포인트가 너무 많아 다시 한 번 필름 걱정이 없는 DSLR의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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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문화의 발상지가 물이 풍부한 유프라테스 강 유역이라서 물을 다스리는 방법을 전통적으로 잘 알아서 그럴까? 아니면 오랜 세월 사막의 유목으로 지내던 이슬람 왕조 선조들의 물에 대한 경외심이 표현된 것일까? 알카사르 내부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분수와 물길과 못을 보노라면 그 설계 기법과 치밀한 측량술, 정밀한 시공에 감탄을 하게 된다. 물의 정원 중간 부분에서 건물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으며, 전설에 남아 있는 '공중 정원'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이 알카사르에서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이사벨 여왕을 알현했다고 한다. 세계 역사를 완전히 전환시킨 신대륙 발견이 바로 이 코르도바의 알카사르에서 시작된 셈이다. 물론 신대륙을 향한 항해의 본거지는 세비야이다. 따라서 콜럼버스와 관련된 유적은 세비야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 곳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원의 한 쪽에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 부부를 만나는 장면의 조각상이 있다.( 레콩키스타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 왕 부부 합작으로 이루어졌으나, 이사벨 여왕이 훨씬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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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승. 전. 결. 문장의 구성은 이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배웠다. '물의 정원'이 어떤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공간의 구성도 이 법칙을 따랐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은 잔잔히 흐르다가 한 곳에 고여 있다가 빠른 물살로 낙하하기도 하다가 가장 끝에서는 한 줄기 분수로 마감된다. 공간의 연속과 변화, 그 공간의 주인공인 물 흐름의 연출...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조경'이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Landarchitecture'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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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알카사르 관람도 막바지이다. 밖으로 나오는 길에 옛 아랍식의 목욕탕을 보았다. 천정에 별 모양의 채광, 환기구가 있다. 기하학적 형태를 선호한 아랍인들의 취향과 미적 감수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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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르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많이 어두워 져 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로마 다리 위를 보니 먼 하늘에 살짝 무지개가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 하루의 일정을 마감할 시간이 되었다.

저녁 식사 후 코르도바에서 플라멩코를 감상할 까 하다가, 그라나다에서 동굴 플라멩코를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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