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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비벤시아의 나라 스페인 - 06

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by JeongWon Kim

스페인에서의 정식 여행 3일 차,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유대인 거리를 둘러본 후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를 인수하여 코르도바 인근에 있는 Madinat AlZahra 유적지를 경유하여 세비야까지 가는 것이다. 여행을 시작한 후 매일의 일정이 꽤 빠듯하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최대한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짐을 미리 싸 놓고 간편한 차림으로 아침에 거리로 나서니, 어제와는 다르게 하늘이 청명하다. 지난 늦은 저녁 이후로 내린 비 때문에 공기가 더욱 맑아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중해에 접한 남유럽의 푸른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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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4일 코르도바 - 유대인 거리 (Uderia)


'유대인'들에게 스페인의 코르도바는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유대인이라고 스스로 말하거나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세파르딤 유대인이고 다른 하나는 아슈케나짐 유대인이다.(그들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유대교의 각종 전통도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 여행기에서 언급하는 것이 알맞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디아스포라 이후 유대인들이 살 길을 찾아 먼 길을 돌아 정착한 곳 중의 하나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에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이 바로 세파르딤 유대인이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를 통치하던 이슬람의 '콘비벤시아' 정책 덕분에 유대인들도 별다른 차별 없이 그들의 종교를 지키며 각종 상업, 산업과 학문, 예술에 종사할 수 있었고 그들만의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이는 더 많은 유대인들을 스페인 땅으로 유인하는 효과를 가지고 왔다. 당연히, 안달루시아의 각 도시에는 오늘날의 차이나타운처럼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조성되었으며, 당시의 수도 역할을 했던 코르도바의 유대인 거리 (또는 지구)는 그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당시에도 그 민족의 우수성을 십분 발휘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중세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인 '마이모니데스'를 들 수 있다.

10919046_889700924427291_7578403748188847422_n.jpg (코르도바 유대인 지구 골목에 있는 마이모니데스의 동상, 중세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유대인 거리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집집마다 꽃화분을 담장에 걸어 놓고 있다. 하얀색의 담장 때문에 꽃과 잎의 생생하고도 고운 색깔이 짙게 살아나고 있었다. 유대인 거리는 주로 복잡한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 볼 수는 없는 형편이다. 여행 안내서에 의존하여 볼 만한 곳을 찾아다녀 보았으나, 가이드가 없이는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기 마련이다. 마이모니데스의 동상을 보려고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공기가 상큼한 아침에 유대인 거리의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그 거리에 쌓였을 그들의 기쁨과 슬픔과 영광과 몰락을 생각해 본다.

11060293_889289361135114_1905909521069848888_n.jpg (유대인 거리의 어느 골목길. 집마다 외벽에 걸어 놓은 화분이 인상적이었다.)
11050121_889291417801575_7261003164749064051_n.jpg (유대인 거리 안쪽의 분수가 있는 조그마한 광장(?) 피곤한 발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 안내서를 보니, 코르도바의 유대인 지구에서는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고 쓰여 있다. 어느 골목길에서 아담한 가죽 공방을 발견하고 작은 핸드백 하나를 구입했다.

마침 어떤 결혼식(?) 하객들이 지나간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멋있는 남자 두 명 뒤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과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걸어가는 행렬을 만난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신부를 결혼식장까지 모셔다 주는 것 같은데, 물어볼 수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 분위기가 흥에 겨워 우리도 한참을 따라가며 동영상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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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 - Madinat AlZahra


코르도바 역에 있는 렌터카 업체 'Enterprise'에서 여행 전에 예약 해 둔 차량을 인수하였다. 아들 현우의 짧은 스펜인어가 큰 도움이 되었다. 언제 배웠는지 모르지만, 식당에서 가게에서 또는 안내소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 새삼 대견해 보이고 믿음직해 보인다.


Madinat AlZahra'는 코르도바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압둘 라흐만 3세(Abd-ar-Rahman Ⅲ)가 건립한 왕궁의 유적지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 지붕은 없어지고 일부의 기둥과 벽체만 남은 곳이지만, 이 곳을 여행 코스에 넣은 것은 라흐만 3세 때가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한 문화와 문명의 절정기였기 때문이다. 즉, 콘비벤시아가 가장 활짝 핀 기간이었다. 그가 지은, 문헌상으로 보면 화려함의 극치를 나타냈다는 왕궁의 유적을 꼭 보고 싶었다.

늦가을이지만 스페인의 11월 한낮의 햇살은 제법 뜨겁다. 박물관을 먼저 본 후에 셔틀버스를 타고 유적지에 들어섰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서 암갈색 유적지, 건물의 잔해들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 세기 전의 영화로움이 이젠 폐허로 남은 모습을 보면서 권력의 무상함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11040402_889737631090287_2292606148463768149_n.jpg (한 때는 화려했던 라흐만3세의 왕궁이었던 유적지, Madinat AlZahra)
1.jpg (무너지고 퇴락하였지만 남아 있는 몇몇의 디테일들이 당시의 화려함을 말해 주고 있다.)
2.jpg (꽤 큰 규모의 왕궁이어서 아직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물이 필요한 모든 공간 (욕실, 화장실, 주방 등)에 자연 수압을 이용하여 물을 공급한 시설이 있고, 욕실로 쓰였을 법한 공간의 바닥에는 오늘날의 배수구와 거의 형태가 같은 구멍이 있다. 급수와 배수를 완벽히 처리한 디테일이 놀랍다. 모터나 펌프 없이 자연수압만으로 전체 공간에 급수와 배수처리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3.jpg 욕실로 쓰였을 것 같은 공간의 바닥에 있는 배수구)

천천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생각해 본다. 불과 1,000여 년 전의 문명이 이제는 허물어진 폐허로 남았듯이, 언젠가는 역사의 종말이 올 터인데, 그동안 인류가 쌓아 놓은 모든 학문과 기술과 예술이 거품처럼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역사 종말 이후, 하늘나라의 세상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들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겠지만...

4.jpg (여행하면서 인간과 시간과 공간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유적지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허기를 채우고 세비야를 향해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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