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저녁때가 다 되어 세비야에 도착.
예약해 둔 호텔이 있는 지역은 오래된 동네라 그런지 길들이 꽤 좁다. 주차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호텔에서도 주차비를 별도로 받는다. 이해는 하지만,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체크인 후 방에 짐을 풀고, 간단히 씻은 후 세비야의 야경을 즐기러 곧바로 외출. 안달루시아의 중심 도시이자 세계적 관광지라서 해가 저문 저녁거리이지만, 사람들로 인하여 분위기가 활기차다. 구글 지도를 안내자 삼아 대성당(Sevilla Catedral) 광장으로 향했다.
세비야는 대항해 시대 이후 크게 번성한 도시이다. 물론 로마 때부터도 큰 도시를 이룬 지역이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금융과 문화의 중심지이다. 레콩키스타와 연이은 대항해 시대 이후 신대륙(사실 이 신대륙이란 표현은 지극히 서양의 자기중심적 표현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문명사회를 이루고 살 던 땅이 신대륙은 아닐 것이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재화로 인하여 번성한 도시이기 때문에 주로 그 이후의 역사가 깊게 서려 있는 도시이다. 유명한 문학작품이나 오페라 등의 배경으로 애용되었을 정도로 근대 이전에는 세계적인 도시였다. 로마나 아랍인들의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코르도바와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서 자세히 보려면 최소 2박 3일은 머울러야 될 곳이지만, 과감히 생략하고 세비야 대성당과 스페인광장만 중점으로 보기로 했다.
2013년 11월 14일 - 세비야 야경
천천히 걸어서 성당 근처 광장에 도착하니 완전히 어두운 밤이 되었다. 경관 조명을 받고 있는 대성당의 위용이 대단하다.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며, 모든 성당 중에서도 세 번째로 크다고 하는데, 밤하늘을 배경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위풍당당하다.
기온도 적당하고 기분 좋게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도 살짝 불고 낯선 도시에서의 이른 밤이라는 분위기에 문득,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지에서의 자유시간 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 났다. 무언가 살짝 일탈을 해야지 보람이 있을 것 같은 일종의 해방감... 여행지에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여유로움이다. 성당 근처에는 꽤 오래되었을 법한 음식점들이 많다. 스페인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인 타파스를 늦은 저녁식사 메뉴로 정했다. 원래 맛이 있는 것인지, 아침부터 많이 움직인 하루의 꽉 찬 여정으로 인한 배고픔 때문인지, 어쨌든 맛있게 먹었다. 스페인 음식은 대체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식사 후 대성당 바로 인근에 있는 알카사르 주변을 산책. 세비야의 알카사르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고 건축적 멋이 있는 곳이지만, 길거리에서 보는 야경으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세비야의 알카사르는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 건물이며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내부는 무척 화려하다고 한다. 내부를 안 본 것이 아쉬웠고 사전 조사를 더 철저히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알카사르 주변을 산책하고 호텔로 돌아가기에는 아까운 시간이라, 마차를 타고 세비야의 밤거리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호객하는 마부에게 흥정도 제대로 못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마차에 탄 채로 세비야의 야경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그러나 말이 나이가 많았는지, 꽤 힘들어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대성당 근처에서 출발하여 스페인광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 싼 금액은 아니지만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는 길에 어느 골목길에서 아름다운 아코디언 연주 소리가 들린다. 거리의 악사, 구걸을 우아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밤이라는 시간의 배경 때문이 그 소리가 더 멋있어 보여 현우가 약간의 돈을 주었다. 그런데 돈을 준 다음부터 계속 같은 소절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돈을 냈으면 빨리 가라는 의미이다. 대단한 상술이다.
어느덧 세비야에서의 밤이 깊어졌다. 몇 가지의 새로운 추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