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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비벤시아의 나라 스페인 - 08

아들과 함께 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by JeongWon Kim

어느 한 사람, 한 가지 사건, 하나의 새로운 생각으로 인류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콜럼버스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인류의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콜럼버스로 시작된 대항해 시대 이후에 비로소 서구사회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그런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며, 사실상 서구식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게 되었다. 또한 대항해로 인해 변화된 세계 경제 질서는 르네상스와 함께 중세를 끝장 내고 근대가 시작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세비야는 여러 가지로 기억될 만한 도시이다. 한 때의 번영과 영화로 인해 많은 예술 작품들의 무대가 되었으며 스페인을 상징하는 투우와 플라멩코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한 많은 것 중에서 세비야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콜럼버스의 업적'이다. [물론 인류 전체의 역사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업적이지만, 그 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름대로의 문명을 일구며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는 커다란 재앙이었을 것이다.] 코르도바는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알현하여 대항해의 시작이 된 도시라 할 수 있고, 세비야는 그 이후 진행된 대항해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세비야에는 콜럼버스와 관련된 여러 유적이 있지만 일정상 그중에서 세비야 대성당만 보기로 하였다.


2013년 11월 15일 세비야 - 대성당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어젯밤과 분명 같은 길인데 그 분위기가 많이 달라 보인다. 밤의 조명과 아침 햇살의 차이가 건물들의 외관이 주는 이미지를 변화시켜 주고 있다. 어느 것이 진정한 건물들의 모습일까? 본질은 하나이나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현상이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현상만으로는 본질을 알 수 없다.

사무실에서 한 푼이라고 더 받으려고 고객과 상담하는 나와 이렇게 일견 여유롭게 여행하고 있는 나 중에서 어느 모습이 나의 진정한 본모습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침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대성당에 도착. 아침 햇살에 빛나는 성당과 파란 하늘이 어울리는 아침이다.

1.jpg (아침 햇살과 신선한 공기, 여행 4일 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매표소에 가 보니 관람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근처에 있는 세비야대학교를 다녀오기로 했다. 세비야대학교는 스페인의 명문 대학 중의 하나이며 기술과 과학 분야가 유럽 전체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캠퍼스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학 건물은 원래 담배 공장이었다고 한다.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였다는 그 담배 공장. 아니, 무슨 담배 공장 건물이 이렇게 좋았을까? 리모델링을 한 것일까? 건물 내부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발랄하고 쾌활한 대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젊음이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1.jpg (세비야대학교 내부 중정)


1.jpg (대학교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공원. 천천히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나 대성당의 관람시간 때문에 스쳐 지나갔다.)

다시, 대성당으로 돌아오니, 입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성당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크기가 첫째인지 둘째인지가 아니라 그 건축물 안에 어떤 시대의 문화와 역사와 철학이 담겨 있는 가 하는 것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 양적 세계관에 사로 잡힌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가장 먼저가 중요할 뿐이다.


1.jpg (남쪽 도로에서 본 세비야 대성당. 약간 변형된 고딕 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jpg (내부에 들어서니 비로소 그 공간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이 그 건축물 자체의 웅장함과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콜럼버스의 묘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성당의 내외부에는 기록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긴 세월 동안에 국가적 심혈을 기울여 지은 건물인데 오죽하겠으랴. 그러나 오늘의 관람 포인트는 바로 콜럼버스의 묘. 성당 중앙의 약간 측면에 그의 묘가 있고 그 위에 석상이 있다.


1.jpg (콜럼버스 묘 위에 있는 석상. 그의 위대성을 나타내고 있다.)

콜럼버스의 묘를 지키는 이 거대한 석상은 네 사람의 왕들이 그의 관을 들고 대성당의 남쪽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형상이다. 네 왕은 그 당시에 스페인을 분할해서 다스리던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바라, 즉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에 있던 네 왕국의 왕들을 상징한다. 왕들이 직접 운구할 정도로 대단한 위업을 남겼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비록 죽은 뒤이지만 대단한 예우다. 유치원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그들 나름대로는 자랑스러운 역사이겠지. 초롱 초롱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보석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1.jpg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유치원 아이들.)

대성당 안에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과 당시 유력 가문의 예배당 등 볼 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콜럼버스의 묘를 보았다는 것으로 크게 만족한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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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巳足)

콜럼버스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로 향하는 미지의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에 나선 것은 욕심과 오해와 신앙 때문이었다고 한다.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
지구가 그리 크지 않아 서쪽으로 항해하여도 그리 오래지 않아 인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지식. 그리고 종말론적 신앙.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지금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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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巳足 2)
사실 세비야 대성당에 콜럼버스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역사적, 기록적으로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 연유일까? 지금 자기 고장에 진짜로 콜럼버스가 묻혀 있는 무덤이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네 군데나 된다고 한다.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바쁜 법이다.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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