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부생의 고민(1)
종속 변수가 뭐고, 독립 변수가 뭔데?
2010년 11월이었다. 날씨가 슬슬 쌀쌀해지는 시기. 그 때에 나는 첫 논문대회를 나갔다. 기억하기에는 아주 미세한 눈이 화랑대를 덮었었다. 머플러도 두꺼운 것을 하고, 발표도 한다고 첫 양복도 맞추고 참 설레는 기억이었다. 스무 살의 이정우에게는 정말 좋은 경험이 아니었을까? 다른 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친하게 지내는 형이 같이 나가자고 해서 출전을 결정을 했고, 논문을 대략 두 달 안에 작성해야 했다. 우리 분과의 주제는 한미동맹 강화 방안.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 여러 학교 정외과, 군사학과 사람들이었다. 이 분야의 지인을 사귈 기회이기도 하고 너무 좋았다.
그런데, 막상 논문을 쓰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했다. 논문이 뭔지도 모르겠고 학술적인 글쓰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고등학생 때, 토론을 한다고 그러면 근거를 어떻게서든 멋있고 확실하게 보여서 상대방을 꺾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글쓰기를 이유를 갖춰서 하면 어느 순간 그 이유가 맞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글을 끼워맞춰서 쓰는 사건도 종종 벌어졌다. 상황을 살펴보면 분명히 어느 꼭 맞지만도 않고, 틀리지도 않은데 내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토론은 그런 내용은 없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니 나는 우선 "한미동맹 강화방안"에 대한 이유만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미동맹이 강화된다는 것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사이의 군사 동맹, 경제 교류를 활성화한다는 뜻일테니까 이유만 결정하면 분명 글이 잘 써지겠지? 사회과학 논문쓰기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니까 종속 변수와 독립 변수라는 단어도 나온다. 종속 변수는 결과고 독립 변수는 원인을 뜻한다. 결국 지금 나에게 한미동맹 강화 방안이 종속 변수가 될테고, 내가 찾는 이유가 독립 변수가 되겠네. 아주 간단해보였다.
빨리 독립 변수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기존 연구를 막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존 연구에 없는 무언가 획기적인 이유를 찾아서 엄청난 논문을 쓰고 말거야! 스무 살의 이정우에게는 정말 패기가 엄청 넘쳤던 것 같다. 밥을 먹지 않아도 재밌었고, 물을 먹지 않아도 힘들지 않았다. 앉아서 계속 글을 읽고 얼른 이 글을 완성하면 난 분명히 어느 정도 학자의 단계에 다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쁨에서 였을까.
같은 고민은 계속 되었다. 2011년의 논문 공모전을 위해 글을 썼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원인과 결과만 정해지면 글은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논문에 없기만 하면 되는거잖아. 논문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니? 난 그렇게 논문을 완성했어. 근데 왜, 나한테 상을 주지 않느냔 말이야? 내 논문이 뭐가 부족한데! 교수들이 뭘 모르네. 에휴. 이런 고민을 당시에 했다. 나는 참 거만했다. 20대 초반이니까 할 수 있었던 생각일까?
연구는 종속변수에 대한 검토부터
어느 학교에서 논문 쓰기 멘토를 하면서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나의 학생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유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제목에도 무엇이 무엇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자세히 썼다. 아직 기존 연구를 검토하기도 전이었는데 말이다. 이것을 보면서 나의 20대 초반을 돌이켜봤다. 나는 이렇게 논문 쓰기를 하지 않았던가? 사실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수업 과제를 위해 레포트를 써본 것이 전부일테고. 레포트에도 분명 근거를 잘 밝혀서 주장을 적는 것도 있지만 현상을 요약하고 보고하는 연습을 좀 더 많이 해보았을 것이다.
어떤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결과가 되는 종속변수에 관해 먼저 조사를 해보자. 이유야 어찌되었든, 학자들이 어떤 결과가 되는 변수에 관심을 갖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자들이 쓰는 논문에는 종속변수를 둘러싼 물음이 가득할 것이다. 예컨대, 나의 석사학위논문의 종속 변수는 권위주의 국가의 보건 지출이다. 보건 지출이란 무엇인가? 정부가 시민의 보건을 위해 투자하는 모든 비용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이 정치학에 왜 중요할까? 최근 권위주의에 살고 있는 전체 인구가 늘어나면서 민주주의와 다른 체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보장을 받고 있을까?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차이가 보건 지출의 차이를 가져올까?
이렇게 종속변수를 둘러싼 물음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종속변수에 대한 엄밀한 정의에서부터, 이것이 정치학의 논의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에 대한 질문을 도출한다. 아울러, 권위주의에서 어떤 국가가 보건 지출을 더 쓸까, 혹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차이가 어떤 보건 지출의 차이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결국, 어떠한 연구 주제를 정하는 것은 종속변수에 대한 엄밀한 검토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숙제를 냈다.
첫째,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변수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정의를 하는가를 찾아올 것.
둘째,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변수에 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찾아올 것.
셋째, 그렇게 수행된 연구에서 종속 변수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이 있는지 정리할 것.
정확한 정의로부터 문제 제기까지, 그리고 꼰대에서 벗어나기까지
학생들에게 막상 네가 관심있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며, 문장으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정확히 답하는 이는 잘 없다. 네가 관심이 있는데 당연히 무엇인지 알고 다른 전문가들은 그것을 무엇을 표현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대상과 나의 대상이 같은 것일까? 조금이라도 미묘한 표현의 차이가 있다면 토론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오해가 생긴다. 따라서 내가 연구하려고 하는 대상을 엄밀하게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정의가 다른 연구자의 정의들도 모두 검토한 뒤에 결정한 것이라면 더욱 좋고. 그렇게 나의 연구가 기존 연구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접점이 생긴다.
학계에서 어떤 학자들이 내가 관심 있는 종속변수로 논문을 쓴다면 정말 세밀하고 특정한 주제에 대해 토론이 생긴다. 결국 종속변수로 처음 할 수 있는 질문은, 어떤 국가는 보건 지출을 많이 쓰고, 어떤 국가는 그렇지 않다. 무슨 요인이 이런 차이점을 만들어낼까? 정말 간단하지만 핵심적인 질문이다. 처음엔 종속변수의 이런 차이로부터 연구가 시작된다. 그 이후에 연구를 수행하다보면 "요인"이 많이 밝혀질 것이다. 어느 요인이 더 설득력있을 것인가에 대한 서로의 연구가 시작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자연히 다른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에도 학자들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스무 살의 이정우는 이를 알지 못했다. 사실 스물 네살이 되기 까지도 이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고민이라도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겠지. 부족했는데도 자신의 찌르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어쨌든 무엇이라도 배우고 경험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기특하다. 이러한 모습을 돌아보면 내가 꼰대가 되지 않고,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도 아주 조곤조곤 자세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일러주는 것이 가능하다. 나도 뭘 몰랐고, 지금도 뭘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