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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Aug 16. 2021

내 주제가 재미없다고?

어느 학부생의 고민(2)

학사학위논문의 작성


  일본에서 귀국하고 때는 2016년. 일본 나가사키 대학에서 독립 연구를 수행하고 이때 쓴 논문을 체코에 가서 발표했다. 그렇게 발표하고 이 논문을 어디에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좀 더 재구성을 해서 학사학위논문으로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는 바로 미군정 시기였다. 1945년도. 일본에서 적은 논문은 1945년 3월부터 1946년 1월까지 벌어진 일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연구 지도교수는 체코 출신에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의 새로운 헌법 제정과 관련해서 오키나와가 어떻게 포기되었는가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분이 나에게 한국에 대해 연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었고 그렇게 시작했다.


  그렇게 논문 하나를 완성하고 이것을 다듬어서 학사학위논문을 적으려고 보니까 문제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논문 지도교수로 배정된 학부의 어느 선생님께서 나의 논문이 재미없다고 한 것이다. 그분의 감상평은 이러했다.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은 잘 알겠지만, 이것은 해외 학회에나 적합한 논문이라고 하셨다. 순간 학부생 이정우는 기가 막혔다. 해외 학회에 적합한 논문이 따로 있고, 국내 학회에 적합한 논문이 따로 있는 것인가?


  되돌아보면, 학부의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있었다. 1945년 3월부터 1948년까지의 역사에 대해 선행된 연구는 많았고 나의 논문 초안의 구성은 스토리는 있었지만 사실 소개하는 글에 가깝기도 했다. 그 글을 다 읽어보고 자세히 보아야 나의 주제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그런 문제가 있었다. 아니. 논문을 작성하는데 당연히 내 논문을 당신들이 다 읽어보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학부생의 입장에선 좀 섭섭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조사를 했는데. 그 연구 계획서는 아래와 같았다. 실제의 초안 내용이다.


제목: 미군정 시기의 정당 정치, 1945-1948.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이정우

 제1장. 서론
 제2장. 기존 연구의 검토
 제3장. 미군정의 진입, 1945년
 제4장. 모스크바 삼상회담 이후, 1946년-1947년
 제5장. 좌우합작의 실패와 단독 정부 수립, 1948년
 제6장. 결론


  제목만 보면, 그래. 미군정 시기의 정당 정치를 논하려고 하는구나. 미군정 시기의 정당은 뭐지? 그때 선거가 있었나? 그래서 주장이 뭘까? 제목만 보면 알 수 없다. 물론 역사에 대한 논문이니까, 서술한 내용을 다 읽어봐야 되는 건가? 주장이 명확하지 않은데, 이게 무슨 논문이야? 지금은 석사를 마쳤으니까 어느 정도 보는 눈이 생겨서 그랬지. 저 당시의 이정우는 알지 못했던 점이었다. 지금 보니 재미가 없는 지점을 알 것 같았다. 대신, 자극적인 제목으로 관심을 끌 필요까지는 없지만, 확실히 나의 주장이 무엇인가에 대해 제목과 목차를 보더라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역사 사례를 소개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넣어야 연구로서 흥미로울 수 있는 것 아닐까.


결국, 어떻게 고쳤을까?


  다른 논문도 더 찾아보고 그렇게 논문 쓰기에 두 달을 꼬박 썼다. 4학년 1학기여서 수업이 적지도 않았는데, 나는 일본에서 연구를 했던 것이니 논문에 애정도 많았다. 당시 기숙사에 살았던 룸메이트의 증언에 의하면, "이 형은 잠은 언제 자나?"하고 늘 원망했다고 했다. 열심히 쓰는 것은 좋지만 그 좁은 2인실 기숙사에서 불을 계속 켜놓고 타자를 다닥다닥거리면 내가 잠을 잘 수 있었겠느냐고. 그래서 내가 치킨을 자주 샀다. 이거라도 먹고 화라도 풀어달라고.


  그리고는 그렇게 초안을 고쳐서 교수님에게 가져갔는데, 당시 학사학위논문은 세 분의 교수님께 사인을 받아야 했다. 한 분은 정치사상 전공이셔서 따로 코멘트는 많이 하지는 않으셨지만, 지도교수님을 빼고 한 분이 논문 발표를 하던 날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논문 발표를 들으니까 너의 말이 뭔지 알 것 같아. 그런데, 너의 주장이 제목과 목차에도 드러나야 하고, 무엇보다 네가 설명하려는 현상이 완전히 정의되어야 해. 여기서 설명하고 싶은 게 정당 정치야? 이땐 정당 정치는 아니잖아.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은 했지만 결국 여러 정치 세력이잖아. 정치 세력이 뭐가 문젠데? 그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를 제시하고 결과를 그 뒤에 쓰란 말이야. 그럼 글이 좀 더 설득력 있을 거야."


  우선 내가 종속 변수로 설정하려는 현상에 대한 정의가 엄밀하지 않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글에 나의 주장이 면밀히 드러나있지 않았다. 정의를 다시 하면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독립 변수를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신 것. 저 코멘트가 사실 가장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당시 학사학위논문 지도교수님은 "논문은 풍선 하나를 띄우는 거고, 기승전결만 잘 살리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본인의 논문은 분명 훌륭하게 쓰시는데 설명은 이렇게 밖에 안 해주시니까 답답하기도 했고.


  그래서 고친 논문의 최종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그땐 이미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논문의 구성을 고치지는 않았다. 제목도 바꿨고, 목차의 구성도 연대기 순에서 원인과 현상 순으로 바꾸었다. 그러니 좀 더 내가 주장하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공부였다.


제목: 국내 정치세력의 활동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 미 국무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정우

I. 문제 제기 
II. 기존 연구 검토 
III. 미 국무부와 미군정의 관계 
  1. 무계획적인 미 국무부의 초기 점령과 미 24사단의 집행의 괴리 
  2. ‘신탁통치’ 용어 사용 문제에 대한 국무부-미군정 갈등 
  3. 한반도 문제의 국제연합 이관 문제를 둘러싼 국무부-미군정 갈등
IV. 정치세력의 활동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의 성격 
  1.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설립에 대한 입장    
  2. 반탁운동에 대한 대응   
  3. 미소공동위원회와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대처 방식 
V. 결론


  딱 봐도 글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제목도 "국내 정치세력의 활동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이다. 미군정의 대응이 나의 종속 변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바로 미 국무부와의 관계이다. 기존 연구 검토에서는 분명 내 논문과 다른 논문의 차이점이 뭔지 밝혔을 테니까. 제3장에서 미 국무부와 미군정의 관계, 즉 독립변수가 나온다. 아래 하위 목차를 보면 괴리가 있었고 갈등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미군정의 대응을 제4장에서 정리한다. 이렇게 글이 많이 바뀌다니. 이제 단순히 역사를 소개하는 글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제출하던 날, 지도교수님께서 총평에 이렇게 적어주셨다. "역사적 방법론을 잘 활용하여 논문을 작성하였다."


다시, 어느 대학의 논문 쓰기 멘토로


  본래 자신이 예전에 쓴 논문에 대해 연구자들은 잘 말하지 않는다. 수치스러우니까. 그래서 석사를 졸업한 사람에게 가장 위협적인 협박은 바로, 너의 석사논문을 사람들 앞에서 낭독해주겠다는 말이다. 어느 대학의 논문 쓰기 멘토를 하면서 학생들이 글을 구성해보았다고 가져왔을 때, 나의 예전은 어땠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처음부터 잘 썼을까? 어떻게 썼을까? 그래서 밀레니엄 이후 전자 기록이 남아있을 때 학사학위논문을 썼으니 그걸 읽어보자. 문장의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완성하게 되었을까 살펴보게 되었다.


  학생들이 무슨 내용을 가져와도 이 점에 대해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나의 근거를 주고 설득하자. 이렇게 써야 내 의견이 좀 더 드러나고 설득력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설득하자. 권위적인 꼰대보다는 학생을 설득하면서 가자. 상대방의 논리를 못 넘으면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겠나. 교수자로서 무언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자. 이 점이 나를 과거의 나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나의 실수를 교재로 삼는 것.


  그렇게 학생에게,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의 의견이 상대방에게 잘 드러날까를 고민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내도 내가 학위를 받기 이전이니까 내 실수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학생에게 또 설득을 해야 잘 먹히기도 하고 그렇다. 학생 논문의 내용을 같이 읽으면서 고치는 덕이었을까. 내가 지도하던 학생 중 한 명이 최종 논문 대회에서 우수상 수상을 했다.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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