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에 살 때의 이야기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교수에게 보고하면서 살아가던 때, 매주 수요일 오후에 만났는데, 화요일 저녁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찾은 것이 어느 논문에 정말 있는 건가, 내가 헛것을 보지는 않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보고, 겨우 잠들어도 새벽에는 무조건 한 번씩 깨고.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때가 바로 화요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잠을 자지 않고 교수와 만나고 난 다음에 한참 자고 그랬다.
그러던 와중에, 시간은 어느덧 흐르고 지도교수가 사료는 어느 정도 수집하고 어떤 내용인지 분석이 끝난 것 같으니 가설을 만들어오라고 했다. 교수가 이 내용을 어떻게 하면, 어느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가설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다른 논문을 모방하면 되겠지. 다른 사람들이 논문에 가설을 도출하는 논리를 비슷하게 해서 내 논문의 내용을 채우면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학부생이었고, 아무리 모방을 해도 그 이론으로부터 뭔가 다른 물음을 가져온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은 이론이고 그 자체로 외워서 시험을 보고 완벽한 설명을 가진 것 같은데. 내가 거기서 뭔가 더 질문을 만든다고? 지금 이 이론으로도 충분히 사례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이 이론으로 사례를 설명한 적은 없으니까.
사례가 대략 무엇이었냐면, 1945년 3월부터 1946년 1월까지 당시 미군정 하의 조선에서 정치 세력이 세력을 어떻게 넓히고 서로 합치고 분리하고를 반복하는 지점의 역사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45년 9월에, 김구 선생이 1945년 10월에 귀국하였으니, 그 시점에 생긴 수많은 정치 단체의 행동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정치 단체가 뭉치고 어쩌고를 반복하는 이론이 William Riker라고 하는 정치학자의 것이었다. 그는 정치 단체가 연합(Coalition)을 형성하는 것은 크기가 점점 커지다가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면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냉전 시기의 미국과 동맹국의 범위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Riker, 1962).
나는 이 이론으로부터 뭔가 다른 지점을 잡아내야 하는 줄 알았다.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이론을 그대로 가져오면 내 논문인가? 그게 윌리엄 라이커의 논문이지? 그래서 나름 생각해서 가설을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쓰던 노트북을 폐기해서 그날 적었던 가설은 남아있지 않지만, 어느 정당은 이래서 이런 행동을 하고, 어느 정당은 이래서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교수가 내가 만든 가설을 보고 갑자기 2분도 안되어서 종이를 던지더니. "It is terrible. Do it again. Read Riker's book again"라고 했다. 끔찍하다니, 다시 읽으라니. 그래서 내가 "라이커의 책에 가설을 만들 수 있는 답이 정말 있느냐"하고 물었다. 교수는 "책을 제대로 읽어서 다시 만들어오라"라고 했다. 아니, 뭐 그대로 베끼라는 이야기야? 그렇게 해서 가설을 만들면 내 논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줘. 그런 말도 안 해주고 갑자기 교수가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나는 대학원생도 아니고 학부생인데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친절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난 논문 쓰는 법을 지도받은 적도 없는데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집에 오는데 너무 울적했다. 내가 사는 니시마치로 다 와가는 길목에 세븐일레븐이 있었다. 거기서 산토리 위스키와 토닉워터를 샀다. 집에 와서 홀짝홀짝 마시는데 거의 한 병을 다 마셔버렸다. 룸메이트가 와서 이제 그만 먹으라고 말리는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필름이 끊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이마가 의자에 찍혔다. 피가 흐르고 다들 난리가 났다.
남의 이론을 가져오면 그게 무슨 의미야?
시간이 지난 이후에 저 당시를 돌이켜봤다. 정말 남의 이론을 그대로 가설이라고 가져오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뭔가 이론이라는 것은 새로운 게 좋은 건 아닌가? 교수는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처음엔 아, 이렇게 남들 이론 그냥 가져와서 쓰면 되는 것인가 싶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이것을 설명할 더 나은 이론은 무엇인가 찾기에 혈안이었다. 이론을 알면 알수록 재밌었고, 그렇게 공부를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잊고 있었던, 그 당시에는 못 알아듣는 말이 하나 있었다.
윌리엄 라이커의 이론을 그대로 본따서 가설을 만들어갔더니, 교수가 흡족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이제 가설이 있는 것 같다. 윌리엄 라이커의 이론이 시대를 지나면서 어떻게 수정되었는가를 보기는 해야겠지만 이제는 사례 연구의 정확성에 좀 더 집중을 하자.
이 날은 정말 교수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기분을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넘어가면 좋은가보다 생각했으니까. 교수가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따로 이상한 가설을 만들지 말고 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이거라고 설명하는 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존의 이론 논의를 모두 가져와서 그것을 통해서 가설 만드는 법을 연습할 수 있으면 좋지만 학부생이거니와 그러면 시간이 길어지고 교수도 설명할게 많아지니까. 그렇지 않았을까?
저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서 세 가지의 가설이 생겼다. 첫째, 모든 정당은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둘째, 모든 정당은 연합을 이룰 때 크기를 키운다. 셋째, 연합의 목표를 달성할 경우, 크기를 더 이상 키우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가설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례를 열심히 적었다. 그렇게 한 편이 완성된 것이다. 이때는 이제 이런 이론을 통해 설명하는 연습을 했으니, 앞으로 다른 논문을 쓰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교수는 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저 일이 있은 이후에 문제가 생겼다. 바로 다른 이론만 보고 내 주장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 비슷하게 논문을 적는 버릇이 생겼다. 아는 것이 저 정도니까 더 이상을 못 쓰는 것이었겠지. 그 이후에 내가 가설을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설계하게 된 것은 바로 석사 입학 이후이다. 기존 연구와 연관이 있으면서 동시에 독립변수로 제안할 수 있는 것.
좋은 가설이란?
종속 변수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를 했으면 이제 종속 변수에서 나타나는 특징 등을 설명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종속 변수와 이유가 되는 독립 변수 모두 무엇인지 엄밀하게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측정할 수 없고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경우, 사회과학에서 설득력 있는 변수로 자리잡기가 힘들다.
그렇게 독립 변수가 나오게 되고 측정이 가능하다면, 쉽게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단순한 가설을 세운다면 설명이 더 단순하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런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좋은 것이다.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이 하는 주장이 이것이다. 일반화에 실수가 있는 두 모델이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을 고른다 (Domingos, 1999: 410). 아래와 같은 단순한 설명이 일반화를 다른 실수 없이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A가 증가한다면, B가 증가할 것이다."
"A가 증가한다면, B는 감소할 것이다."
"A는 B에 미치는 영향이 없을 것이다."
아니면, 해당 현상을 어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경우에는 그 이론을 가설로 삼아 가져와도 좋다. 단, 왜 그 이론으로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당화는 필요할 것이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법은 그 이론 말고도 많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논문 쓰기 멘토를 하면서 학부생들의 가설을 본다. 누군가의 이론을 가져와도 좋고 자신이 단순히 가설을 만들어와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단순한 논리를 하나 만들어와서 일반화를 하거나 사례 비교 연구를 도모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좋았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고민하면서 머리를 깨지 않아도 되니까.
<참고 문헌>
Domingos, Pedro, 1999, "The Role of Occam's Razor in Knowledge Discovery", Data Mining and Knowledge Discovery, 3, pp.409-425.
Riker, William, 1962, The Theory of Political Coalitions, Yal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