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고민이었다기보다는 대학원을 지망하는 주위의 지인들에게 많이 듣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을 나름 정리한 것이다. 이론을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까? 고전을 얼마나 읽어야 논문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진학하고 싶은 대학원 전공의 유명한 논문들은 모두 읽어보려고 리스트를 뽑아보면 정말 셀 수가 없다. 그렇게 하나씩 읽으면 좋겠지만 우선 석사 입학 전에 긴 시간이 있지 않는 이상, 모두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불안함은 커져간다. 내가 이렇게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어느 노교수의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불문학자는 자신이 프루스트를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평생 부끄러움을 가지고 살았으며, 죽기 전에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여 프루스트의 책을 통독을 했다고 말한다 (중앙일보, 2021년 8월 16일). 노교수님의 평생에 걸친 연구가 깊이가 없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현상과 문학 작품에 대한 사유는 물론 방대한 독서와 그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되겠지만,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세한 분야의 책을 읽기에도 바쁘다. 노교수님도 분명 세부 전공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사유만으로도 평생 충분히 바쁘셨으리라 짐작한다.
학부 때는 여러 과목을 골고루 듣는다. 나도 "성과 정치", "미국 정치론", "비교정치사상",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과정" 등, 여러 내용을 머리에 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방대한 자료를 보고 외우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본다. 어떤 학생을 보면 정말 똑똑하다. 이 전공의 내용도, 저 전공의 내용도 잘 알고 있다. 사실 지식을 직접 생산하는 역할보다는 어떤 전공을 자세하게 배우는 기회를 학부 때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학부생의 시점에는 분명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이론, 고전을 다 읽고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이 그런 독서를 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정치학은 키워드별로 어떻게 이론이 발전하여왔는가에 관한 궤적이 있다. 이론의 궤적을 배우는 것은 깊이 있는 공부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정치학 대학원 수업에서도 모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정치학 서적은 각 장 별로 대체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잘 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장만 읽어도 저자의 큰 그림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대학원생들은 너무 많은 책을 읽히는 교수의 수업을 피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수업은 대체로 피하는 학생의 축에 속했다. 물론 내가 다녔던 석사과정의 경우, 주제별로 중요한 논문과 책을 읽히는 이른바 '코어' 수업이 있어서 부분적으로나마 모두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수업이 나의 석사과정에서 제일 힘든 수업 중에 하나였지만, 지금 논문을 쓰면서는 대략 어떤 이론을 어떻게 가져와서 이렇게 논문을 쓰면 되겠다고 하는 감은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이처럼, 대학원은 여러분을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에, 미리 읽으면 좋겠지만 굳이 고생을 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미리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불편한 것은 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2019년에 개인적으로 단독 저자로 투고한 논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논문의 주제는 필리핀의 하원에서 국회의원이 탄핵 투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필리핀 국회의원의 의회 내 투표 성향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아서, "이런 연구가 없으니, 나는 하려고 한다"라고 처음엔 적었다. 기존 연구도 적으니 인용할 수 있는 논문도 많지 않았고 그래서 어디서부터 무얼 읽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런데, 특정 국가의 사례라고 해서 일반화를 위한 연구가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필리핀 국회의원의 의회 내 투표 성향 연구라면, 우선 그렇다면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회의원의 투표 성향 연구는 어떨까? 다른 국가에서 국회의원의 투표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를 파악해보는 것이다. 그때까지 발달한 이론들이 정말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그 이론들이 필리핀의 예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비슷하게 민주주의의 수준이 낮은 남미 국가들의 경우는 어떨까? 이렇게 비교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읽지 못했고 논문이 깊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기존의 연구와 어떤 관련이 있어 어떻게 기여를 하며,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를 적지 못했다. 이 당시의 나는 어디까지 읽어야 되는가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그 논문을 포기해가고 있을 무렵에 우리 학과에 막 부임한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고, 해당 논문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 교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아이디어를 얻어서 논문을 고쳤고, 그렇게 고칠 때에 그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독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논문에 대해서는 방대한 독서가 기반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글을 하나 완성하는 집념이 있다면, 분명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은 다시 말하면,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는 우선 자유로워야 어떤 분야의 전공에 마음 편하게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렵고 부족하면, 남들에게도 똑같이 어렵고 부족하다. 그리고 수업을 들으면서 논문을 분명 열심히 읽는다면 그 전공에 자연스럽게 적응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조선일보, 2021년 7월 12일, "92세 불문학자의 고백 “프루스트 처음 通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