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이가 없다. 내가 맹장염이라니.
그것도 필리핀에서.
편입을 하고 1년간 성실히 학교를 다녔다.
아, 물론 성적까지 성실하지는 않지만.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친오빠가 있으니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겠지.
바기오까지 마닐라에 도착해서 약 5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도착하니 크리스마스였다. 난생처음으로 더운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니 느낌이 이상했다.
학원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내 눈앞에 산타할아버지가 보였다. 긴팔을 입고 있는 게 땀이 차시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스파르타 학원이라는데 너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적응을 잘했다. 급식 같은 밥을 먹고도 매점에서 파는 불닭볶음면을 먹을 생각에 매일이 신나 있었다.
오빠는 짬이 차서 단어 시험을 보는 조교가 되어있었고 쿨한 척 장인이었던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도 빠르게 시험을 보고 쿨하게 퇴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정말 이상했다.
‘왜 몸이 안 움직이는 거지?’
아침 수업에도 참여할 수 없을 정도여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누워있었다. 속도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보건실에 갔더니 가스가 찬 거라며 바닥에 팔과 다리를 짚고 고양이 자세를 해보라 했다.
살짝 수치스러웠지만 열심히 따라 해도 괜찮아지지 않았고 약을 먹어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이게 바로 촉인 걸까.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담당 선생님께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지만 필리핀 병원에 가면 한국과는 다르게 많이 낡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냥 약 먹고 쉬라고 했지만 병원을 가야겠다고 너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리며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거든.
나는 병원에 가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미어캣처럼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푸세식 변기에서 소변 검사를 하고 오라니.
아... 여기가 필리핀 그것도 시골이었다는 것을 깜빡했다.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나오니 의사가 와서 이것저것 신체검진을 하기 시작했다. 불길했다. 이건 내가 간호학을 배우며 맹장염을 진단할 때 하는 거였는데.
의사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 나왔다.
“appendicitis"
정확한 명칭은 충수돌기염. 임상에서는 압빼라고도 부른다.
망했다. 나 여기서 수술 못해. 집에 가고 싶어졌다.
집에 가고 싶다고 눈물로 설득했으나 의사는 단호한 얼굴로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맹장이 터져버리면 큰일 난다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 초음파 검사라도 해보라는 엄마의 전화에 초음파 검사를 하기로 했으나 초음파실이 문을 닫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곧 열릴 줄 알았던 초음파실은 오전이 되어야 열렸고 난 10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이에 한국에 갈걸.
초음파 검사를 하자마자 맹장염이 맞다며 바로 수술하자고 해서 수술을 했다.
필리핀에 온 지 5일째,
12월 30일.
나는 여기서 맹장 수술을 했다.
필리핀은 연말에 폭죽을 터뜨리는 행사가 있는데 오빠랑 같이 병원에서 폭죽이 터지는 걸 봤다. 새삼스레 오빠한테 미안하고 고마워졌다.
회복을 하며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아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수술이 잘 됐는지, 잘 아물었는지도 확인하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렇게 부푼 마음에 떠난 어학연수는 1 주일하고 이틀 만에 끝나버렸다.
바로 한국에 도착해 모든 검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그리고 남은 방학 동안 원하던 대학교에 와서 고민했던 내 진짜 진로를 탐색하고 싶어졌다.
1년 동안은 새로운 학교와 전공에 적응하느라 공부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케케묵은 내 버킷리스트를 실현해 보고자 마음속 고이 간직했던 연기라는 걸 해보고 싶어졌다.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며 나도 저렇게 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생각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던 와중 소속사 오디션이라는 공고를 보았고 급하게 연기라는 걸 준비해서 보게 되었다.
내가 연기라는 걸 알리가 있나.
오디션을 보자마자 돌아오는 대답은
“연기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연기학원 왜 안 다녀요? “
너무 민망한 나머지 오디션을 주최한 학원만큼은 다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어릴 적 춤 동아리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 특기로 잠시 춤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1차 합격이란다.
‘대체 내가 왜 합격이지?’
[작가의 한 마디]
돌아보면 인생은 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갔다.
아프지 않았다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일로 삶의 방향이 흔들리고 있는 이들에게,
그건 실패가 아닌 잠시 멈추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방향을 전환하라는 신호.
이제는 모든 우연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 우연과 찰나의 순간들이 결국 나를 나아가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