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의 첫 시작은 술과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줄줄이 이어진 행사들에 눈을 감았다 뜨니 중간고사였다.
외딴곳에 있었던 학교 덕분에 술만 주야장천 먹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게임하는 법을 몰라 연이어 마시던 7잔의 소주로 나는 잠시 우주에 다녀왔다.
가서 달도 보고 별도 보고 온 것 비밀이다.
기숙사에 만취 상태로 선배들에게 업혀 들어가다 보니 쫓겨날 위기에 처했고, 벌점을 없애기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남아 소등을 하곤 했다.
이제 보면 정말 웃프던 시절이다. 선배들이 말아주던 요구르트 소주... 어쩐 지 맛있더라니.
처음으로 본 중간고사에 나온 화학이라는 과목은 나에게 외계어와 같았다. 대학교 와서 이 날 처음으로 책이란 걸 펼쳐본 것 같다.
선배들이 첫 학기는 샤프심 학점이었다고 한 게 거짓말이 아닐 수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다른 과목을 벼락치기로라도 공부했지만 1학년 1학기 성적은 처참했다.
'아... 이런 게 대학생활이었나?'
그리고 첫날부터 화장실에서 삼각김밥을 먹게 될 줄 몰랐던 나는 대학교 내에서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분명 어른들이 대학교만 가라고 했는데...
샤랄라 한 원피스를 입고
캠퍼스를 누빌 20살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쉬운 성적에도 재수란 없다고 다짐하며 들어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편입을 결심했다.
평소 사람을 좋아하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기에
간호학과를 가고 싶어졌다. 식품영양학과에서 간호학과로 들어갈 수 있는 학교들을 찾다 보니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연세대학교였다.
아싸도 되고 술도 왕창 먹고 학점도 망쳤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뭔들 못하리.
악의 힘은 성장의 원동력이라던데. 독기를 품은 사람은 정말 그 힘이 나는 것 같다.
그냥 앉아서 오래 공부하면 다일 줄 알았던 나는
2학년이 되며 오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공부했고
일어날 때마다 노래진 얼굴을 보는 것은 덤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노래지는 얼굴을 보고 열심히 사는 내가 뿌듯하다고 생각한 것은 부끄러운 과거다.
결국 4.5라는 성적과 수석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기숙사에서 짐을 빼는 날,
갑자기 앞이 뿌예지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고 결국 쓰러졌다.
쓰러지는 당시, 짐 빼는 것을 도와주려고 오신 부모님 앞에서 이렇게 되어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1초 들었다.
눈을 살포시 뜨니 응급차에 실려온 인근 병원이었고
의사 선생님께서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요?”라고 물어보셨다.
“네,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어요... “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대답했고
슬픈 답변과는 다르게 침을 한 움큼 흘리며 한숨 푹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니 아빠는 내가 웃기다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의사는 내가 자는 사이에 아빠를 불러서 면담을 요청했단다.
배려심 많던 의사는 한껏 걱정된 표정으로
“아버님, 따님께서 공부 스트레스가 심하신 것 같은데 너무 압박은 주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걱정 어린 말투로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때 아빠는 “네...”라고 시무룩하게 답했지만 공부하라고 시킨 적이 없는데 억울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렇게 1년이 정신없이 지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선발 인원 2명.
1차 편입시험으로
논술과 간호학 전공시험을 보고 왔다.
도서관에서 눈물을 흘리며 보낸 나날들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모르기에 남들이 하듯,
'망했어요'라는 망언을 하고 다녔다.
혹시 모르지. 진짜 망했을 수도.
1차 합격 발표가 난 날은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발인일이었다.
나도 하늘도 울고 있었으나
할머니가 준 마지막 선물인 것처럼 합격창만큼은 웃고 있었다지.
'고마워 할머니.
앞으로 할머니를 닮은 어르신들한테 더 잘하라고, 마음을 귀하게 쓰라고 준 거라 생각할게.'
눈이 펑펑 내리던 2차 면접 날 이 말을 면접관에게 건네며 눈물 콧물을 다 쏟았다.
하지만 면접을 진행해 주시던 교수님들은
눈물 짜기 프로젝트가 왕왕 있었던 과정이었던 건지
약간의 멈춤과 한숨으로 휴지를 건넸고
그렇게 나는 붙었다.
[작가의 한 마디]
20대 초반, 도화지 위에 처음으로 예쁜 그림을 그렸다.
도전을 하며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웠고
이게 맞는 걸까 수없이 되새기던 시절을 지나
마지막 관문을 남겼을 때 외친 한마디.
‘나만큼 준비한 사람은 없길 바라.’
사실은 불안해하면서도 느낀 것 같다.
내가 잘 될 거라는 것을.
그대들의 발걸음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내 뒤에는 나라는 사람이 등지고 나아가고 있음을
저 너머에서 응원하고 있겠다.
매서운 바람이 일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
노란 얼굴과 눈물범벅으로 보냈던 나의 20대 초반은
끊임없이 문을 두들기면 열릴 수 있음을 선물해 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지.
내 20대가 롤러코스터가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