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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y 04. 2020

고민은 하나, 다양한 반응

층간 소음에 대한 주변 사람들 반응

층간소음을 겪고 있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내게 해줬던 반응이다. 조금이나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주변 사람한테 고민을 털어놨었다.



1. 층간 소음으로 괴롭다고 하니 그 문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웃었던 친구가 있다. 깔깔거리면서 숨 넘어가게 웃길래 왜 웃냐고 물어봤다. 괴롭다고 말하는 내 표정이 재밌어서 웃었다고 했다. 층간 소음을 겪어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축복받았다고 해줬다. 이 친구한테 다시는 내 고민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 내 고민에 엄청 공감해주면서 본인도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다고 말해준 친구가 있다. 한탄 끝에 좋은 해결방법이 있을까? 물어보니 이사가 답이라고 알려줬다. 본인의 집은 이사를 가지 못하니까 나라도 빨리 가라고 했다. 이사가 쉬웠으면 더 좋은 환경으로 벌써 갔을 것이다. 이 친구도 위층에 아이들이 너무 뛰어서 괴롭다고 했다.


이야기해봤어?

응. 애들이 뛰는 걸 어른이 어떻게 말리냐고 하더라.

그게 끝이야? 정말 그렇게만 말했어?

응. 계속 뛰니까 몇 번 더 말했지. 우리 집 와서 자기네 애들 뛰는 소리 듣고 간 적도 있어.

그랬더니? 괜찮아졌어? 뛰는 소리 듣겠다고 내려오면 덜 뛰잖아. 안 뛰던가. 그때도 똑같았어?

아니. 당연히 덜 뛰지. 그냥 듣고 갔어.

말도 안 해?

했지. 근데 애들이 뛰니까 어쩔 수 없대. 그 말만 또 하고 갔어. 변한 건 없고.


대화는 이사가 답이라는 결론으로 끝났다. 이후 대화의 화제는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넘어갔다.



3. 층간 소음 때문에 이사를 갔다고 말씀해주신 분이 있었다. 부러웠다.



4. 고민이 있냐고 나에게 먼저 질문했으면서 내 대답을 듣고 이렇게 답변한 사람도 있었다. "그걸 지금 고민이라고 말하는 거야?" 굉장히 공격적인 억양으로 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하게 되물었다. 그러고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본인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쏟아냈다. 층간 소음은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귀마개를 꽂고 있든 시끄러우면 잠시 동안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다시는 이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본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그냥 꺼냈으면 됐을 텐데 왜 저런 질문을 했을까 생각해봤지만 아직도 왜 저런 말투와 태도로 나를 대했는지 잘 모르겠다.



5. 매일 잘 때 귀마개를 낀다는 친구가 있었다. 큰 봉지에 들어있는 귀마개를 대량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했다. 효과가 있냐고 물으니 나쁘지 않다고 하면서 특정 귀마개 색깔을 추천해줬다. 계속 끼고 있으면 귀도 아플 것 같고 이물감 때문에 불편할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으니 불편한데 어쩔 수 없이 매일 귀마개를 착용하고 잔다고 했다. 그리고 귀마개를 하지 않는 날이면 자연 소리가 녹음된 영상을 틀어놓고 수면을 취할 때도 있다며 추천해줬다. 폭포 소리, 파도 소리, 빗소리 등을 크게 틀고 자면 잠이 잘 온다고 했다. 잘 때는, 자는 순간만큼은 고요를 즐기고 싶어서 나중에 해본다고 답했다.



6. 본인은 그런 소음에 둔한 편인데 가족이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말해주신 분도 있었다. 본인은 직장에 다녀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서 잘 와 닿지 않는데 종일 집에 있는 사람은 힘들어했다고. 지금도 그러냐고, 어떻게 해결했냐고 여쭤보니 그분은 독립해서 잘 살고 있다고 답변해주셨다.



층간 소음에 대해 대화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벗어날 방법을 공유한 적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이사가 답이라고 외친 적도 있고, 별다른 해결책 없이 기분만 상했던 적도 있다. 이 화제를 대화에 언급한 날에는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기분이 들었다. 해결책은 정해져 있는데 전혀 행동하지 못하니 더 고통스럽다.

요즘은 이 고민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가 망설여져 자주 꺼내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이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층간 소음 때문에 괴로운데 좋은 순간들을 굳이 답 없는 질문으로 망쳐놓고 싶지 않으니까. 고민을 하지만 그저 고민만 할 뿐이니까. 그래도 누군가 현명한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으면 나는 다시 이 질문을 꺼낼 것이다. 언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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