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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y 03. 2020

호의는 무시당하고

층간소음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하지 않는 이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집이 우리집만 있는 건 아니었는지 아파트 방송으로 몇 시 이후로 뛰지 말아 달라, 이웃을 배려해달라는 말이 몇 번 나왔을 때였다. 윗집은 남의 일이라는 듯 개의치 않고 발망치를 찍으며 달리고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높여도, 창문을 열어도,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도 천장을 울리는 소리와 합쳐져 더 시끄러웠고 엄청난 소음에 너무 괴로워서 관리사무소에 찾아갔었다.


예전에 게시판에서 층간소음 분쟁을 조정해준다는 전단지를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집을 나섰다.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기구가 있는지 궁금했고 있다면 빌리고 싶어서 찾아갔다.


관리사무소에 가니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어보셨다. 예전에 층간소음과 관련한 글을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있냐고 여쭤봤더니 그런 건 없고, 아마 층간소음 분쟁을 조정해주는 기관을 소개하는 글일 거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 말을 하는 분 뒤로 커다란 게시판에 내가 봤던 주황색 바탕의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담당자 분과 이야기를 하는데 관리사무소로 전화가 왔다. 통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층간소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층간소음 때문에 다른 집들도 관리사무소로 찾아오냐는 내 질문에 요즘 그런 집이 꽤 많다고 답변해주셨다. 평소 같았으면 소음측정기가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그날은 너무 힘들었고 해결책을 찾고 싶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층간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분쟁위원회에 신고하면 층간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신고해도 소용없어요. 와서 측정하기 전에 위층한테 경고장을 보내요. 그거 받으면 위층이 가만히 있겠어요? 그것 때문에 괜히 더 곤란해질 수도 있어요. 먼저 위층이랑 대화는 해보셨어요?


네. 그런데 저희 집이 예민하다고 해서요. 안 뛰었다고만 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아래층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너무 힘들어요.


애들한테 걸어 다니라고 해도 애들이 말을 안 들을 수 있잖아요. 애들이니까. 위층 부모님도 지금 힘들 수 있어요. 그래서 더 이상 말도 안 하고 그냥 내버려 두고 있을 수도 있거든요. 어떤 집은 위층 발망치 소리가 너무 커서 실내에서 신는 슬리퍼를 들고 위층을 찾아갔대요. 그 후로 괜찮아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애들이 사는 집이니까 과자 사 가지고 말씀드리면 효과가 좀 있을까요?


그렇죠. 과자 좋죠.


그럼 뛸 때 가는 게 나을까요? 나중에 가는 게 나을까요?


뛸 때 가면 분명 거기에 스트레스받고 있어서 좋은 말이 안 나올 거예요. 그러니까 조용할 때. 저녁에 가보세요.


직접 찾아가면 불법이라고 어디서 봤는데요, 신고당하면 어떻게 해요?


아닐 거예요. 아마 그런 경우는 남의 집에 막 들어가려고 하는 경우일 거고. 좋은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그러겠어요? 층간소음이 사실 이사 아니면 답이 없어요. 이사 아니고서야 위층이랑 어떻게든 잘 해결 보셔야 돼요. 그거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하소연하는 나를 다독이듯 말씀해 주신 덕분에 마음이 좀 안정됐다. 처음 목표했던 층간소음측정기는 얻지 못했지만 좋은 해결 방안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층간소음분쟁위원회 신청은 실제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후기를 찾아보니 정말 효과가 크게 있는 것 같지도 같았다. 오히려 층간소음을 내는 집이 적반하장으로 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하라고 한 글을 보니 형식적인 것이구나 싶었다.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일이 커지면 신경 써야 할 일이 이미 많은데 거기에 하나 더 얹는 꼴이라 우리집도 조용히, 좋게, 해결하고 싶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시도해봐야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집에 왔으나 위층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조언도 들었으니 이따 과자 들고 올라가 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견뎠다.






벨을 누르고 기다렸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한번 눌렀다. 그제야 벨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아래층인데요, 아이들 뛰는 소리가..


네, 주의 줄게요. 



내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인터폰은 끊겼다. 과자를 들고 내려오면서 계단에 주저앉고 싶었다. 


마음이 콱 막힌 것처럼 답답했고 답답하다. 뛰는 소리 녹음하겠다고 휴대폰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는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어서 관뒀다. 측정하고 기록하고 신고하는 과정도 번거로워 보였고 한다고 해도 효과는 투자한 시간 대비 미비해 보였으며 만족스러운 후기도 찾지 못했다. 형식적인 것 말고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알고 싶다.


정말 이사 말고는 답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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