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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pr 27. 2020

층간소음, 어느 날의 기록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1시 45분까지.

방학과 코로나 19 그리고 재택근무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겪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층간소음에 대한 기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층에 사는 누군가는 발망치를 쿵쾅대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새벽 5시 30분 즈음 일어났다. 도대체 몇 시에 자길래 지금 일어나는 거지? 평소보다 왜 일찍 뛰지? 발소리에 맞춰 머릿속에 물음표가 찍혔다. 5분 정도 뛰다가 조용해졌다. 공기는 고요해졌지만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울림이 전달될 때마다 심장이 콕콕 쑤시듯 아팠다. 몇 년 동안 견뎠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누군가에게 쫓기듯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덩달아 내 기분도 불안해졌다.


이 날은 상황도 좋지 않았고 아파서 층간소음을 피해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집에 있으면서 어떤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적었다. 마음이 내킬 때마다 시간을 확인하며 당시에 들리는 소음을 적었다. 소음은 종일 만들어 냈기에 매번 시간을 확인하는 건 무의미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나를 감쌌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럽게 나를 덮쳤다.


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며 지내는지 소음을 만들어 내는 순간들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예측해봤다. 공 튀기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공이 아니라 다른 물체를 이용해 내는 소리일 수도 있다. 모든 소리는 어마어마한 진동이 함께 했다.


오전 6시 40분: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씩 푸식푸식 푸시푸식. 우다다다다다 우다다다다다다 체중을 실은 발망치 소리도 천장을 타고 내려왔다. 새벽 5시 30분에 울린 발소리보다 훨씬 빠르고 컸으며 오래 지속됐다.


오전 7시 30분: 공 튀기는 소리와 뛰는 소리가 들렸다. 공을 바닥으로 내리치고 반동을 이용해 공이 솟으면 다시 내리치는 소리가 반복됐다. 공 튀기는 소리는 규칙적으로, 뛰는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울렸다. 탱탱볼처럼 가볍고 말랑한 물체가 바닥에 닿는 게 아니라 농구공이나 축구공처럼 딱딱한 재질의 공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공 튀기는 소리는 잦아들었고 뛰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오전 7시 45분: 방 밖에서 안으로 뛰어들어와 어딘가에 두발로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달리는 마지막 동작에 체중을 실어 바닥을 내리찍는 소리가 울렸다. 누가 서로 다른 무게와 모양을 가진 아령들을 끊임없이 바닥으로 쏟아내는 것 같았다. 찍어대는 발망치 진동에 맞춰서 우리집 방문이 같이 떨렸다. 방문이 떨리면서 경첩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듣고 싶지 않은 합주였다.


오전 8시 15분: 계속 뛴다. 7시 45분에 시작됐던 소리가 지속됐다.


오전 11시 50분: 최선을 다해 뛰고 쉬는 시간인지 간헐적으로 조용해졌다. 30분 정도 조용하더니 다시 뛰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걷는 소리도 들렸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걷길래 코끼리의 걸음인 것인가.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모든 힘을 모아서 왼발을 꽝! 오른발을 꽝! 꽝꽝거렸다.


오후 12시 50분: 뛰는 소리가 잠깐씩 들리더니 조용해졌다가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몇 분 정도 소음을 내지 않았으면 그 아껴둔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는 것 같다. 거인이 우리집 천장을 뜯어내려고 좌우로 열심히 흔들다가 주먹으로 내리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후 1시 20분: 거인이 아직도 주먹을 휘둘렀다. 시간을 보니 점심 먹느라 조용했나 보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만들어진 에너지를 집안에서 쏟아내는 듯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주로 뛰는 동선을 피해 다른 방으로 가려했으나 아이들은 방문 도장을 찍듯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온 집안이 울리고 있었다.


오후 1시 36분: 발걸음이 빠르고 가벼워졌다. 아이들 중 어린아이만 뛰는지, 바닥에 내리찍는 무게를 조절하는지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끄럽다. 가구 끄는 소리가 잠깐 들렸다.


오후 4시 27분: 2시간 정도 조용했다. 가구 끄는 소리가 다시 들리면서 중간중간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 4시 41분: 가구 끄는 소리가 길게 났다. 끼이이익 끼익. 도대체 무엇을 옮기는 걸까. 빠르게 걷는 발망치 소리도 들렸다.


오후 4시 58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달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열 맞춰 줄 서 있다가 순서대로 다이빙을 하듯 착지 소리는 제각각이었다. 불규칙적인 소리에 맞춰 우리집 천장에 달린 형광들이 흔들렸다. 저기 부근에서 뛰나 보다. 방 한가운데서.


오후 5시 07분: 나무 방망이로 바닥을 빠르게 내리치는 소리와 무거운 물체를 여러 개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뛰는 소리가 잠시 잦아들더니 "엄마!"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크게 소리쳤길래 화장실이 아니었음에도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을까. 저 목소리로 지금 집에 보호자가 있긴 있구나,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오후 5시 46분: 우다다다다다 우다다다다다 뛰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을 먹기 전에 남은 에너지를 다 소진할 기세였다.


오후 5시 54분: 드르륵 드르르르르르륵 바퀴 달린 물체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에서 타고 노는 자동차나 보행기 소리 같았다. 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그 진동이 벽을 타고 그대로 내려왔다.


오후 5시 58분: 여전히 발망치를 찍으며 아령을 쏟아냈다. 묵직하고 부피가 큰 무언가를 바닥으로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물기 묻은 무거운 빨래를 양손으로 잡고 바닥을 향해 털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오후 6시 53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오후 6시 57분: 쉬지 않고 뛰었다.


오후 7시 00분: 징을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뒝-


오후 7시 23분: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뛰는 곳마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흔들렸다.


오후 7시 50분: 거인이 천장을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길래 그냥 뛰는 소리도 미칠 것 같은데 이런 소리를 더 낼 수 있을까. 100% 가득 채운 소음 안으로 더 거대한 시끄러움을 꾸역꾸역 밀어 넣듯이 엄청난 진동과 발소리가 천장을 덮었다.


오후 8시 48분: 불규칙적으로 가볍게 뛰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렸다.


오후 9시 24분: 변함없었다.


오후 9시 30분: 이 시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이후로 조용했다.


오후 11시: 20분: 줄넘기를 하는지 규칙적으로 꿍꿍 거리는 소리가 시작됐다. 쿵쿵이 아니다. 꿍! 꿍!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오후 11시 45분: 우리집을 흔드는 모든 소리가 멈췄다. 드디어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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