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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pr 23. 2020

충격적인 암막 블라인드 활용법

위층의 비밀

오늘도, 지금도, 여전히 윗집은 뛰고 있다.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자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소리가 쿵쿵 뛰는 울림과 맞물려 머리가 더 아프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크게 듣자니 귀가 아파서 더 이상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저 미친 듯이 뛰는 발망치 소리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듣고 있다.


간헐적으로 위층 아이가 지르는 고음이 내가 있는 곳까지 들렸다. 아이들이 우다다다 뛰는 소리에 뒤이어 무언가 드르르르륵 끌리는 소리도 났다. 여러 명이 동시에 뛰는지 발소리가 겹쳐서도 들렸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우리 집 전체가 위층에서 만드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요즘 해가 일찍 뜨니 위층도 새벽부터 소음을 내고 해가 늦게 지니 위층도 9시 넘어서까지 뛰어다닌다. 층간 소음 중 뜀에 의한 소음은 언제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가끔 들리는 생활 소음이야 사람 사는 세상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대책 없이 뛰는 소리는 몇 년 동안 들어도 언제나 고통스럽다.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평일부터 주말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빠르면 새벽 4시부터 늦으면 밤 12시까지. 본인들의 기분에 맞춰서 어쩔 때는 새벽까지 소음을 만들어 낸다. 다른 부수적인 소음들도 당연히 있지만 미친 듯이 뛰거나 거대 절구를 빻는 것처럼 천장이 울리게 걷는 발망치가 주를 이룬다.


위층이 집에 없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나날을 소음에 파묻혀 지낸다. 층간소음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머릿속은 복잡하다. 집에 가면 또 뛸 텐데 오늘은 어떻게 버티지. 내일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제발 1시간이라도 푹 잤으면. 지금 안 뛰면 이따 또 뛰겠지? 오늘은 조용할까? 집에서 평온하게 쉬고 싶다.


위층이 이사오고부터 외출 후 집으로 들어가는 행동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아파트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위층을 찾아 불이 켜졌는지 확인하고는 했다. 불이 켜져 있다는 건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사람이 있다는 건 지금도 뛰고 있다는 뜻이니까. 오늘도, 여전히,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표시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도 조금 일찍 스트레스를 받았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불 켜진 걸 확인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놀랐다. 의식하지 않을 때조차 소음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구나. 집으로 들어가는 행동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가장 편하고 안전하며 좋은 느낌만 받아야 할 공간에 들어가는 걸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구나. 위층 때문에.


아래층 배려 좀 해달라고 감정에 호소하면서 위층에 말씀드리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새벽까지 뛰는 소리에 못 이겨 밖으로 나간 적이 있다. 증거를 담아두자. 카메라로 찍어두자. 야밤의 아파트 사진을 찍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였을까, 지금 생각하면 물음표가 떠오르지만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증거라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찬바람이 쌩쌩부는 2월 새벽에 퉁퉁 부은 눈으로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깜깜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다른 층수가 모두 어둠에 잠겨있었다. 자기네들은 절대 아닌데 이상하다고, 일찍 잠에 든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했지만 층간 소음에 대해 언급하면 엄청난 우연으로 보복 소음이 들리는) 위층의 말이 사실인 걸까? 벽과 벽 사이에 동물이라도 지나다니는 걸까? 섬뜩했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보든 안 보든 층간 소음으로 고통스러운 건 같은데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봤다.

암막 블라인드가 위층 창문을 서서히 덮고 있었다.

노란 형광등 불빛이 완전히 차단될 때까지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춥지 않은 날씨였는데 소름이 돋았다.

몇 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서 그럴 리가 없다고 했구나.

밖에서 보면 깜깜해서 잔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집에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까.

형광등 불빛 하나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깜깜했다.


작정하고 소음을 만들어 내고, 이상하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며, 유독 아래층이 예민하다고 몰아가는 윗집인데 여기서 내가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굳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악의적으로 위층은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래층에 대한 배려를 부탁하면 보복 소음으로 돌려주고 본인들은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사도 갈 수 없는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참는 것. 소음에 더 큰 소음이 추가되지 않게 견디는 것. 그게 우리 집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사람이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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