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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r 19. 2020

감정 토해내기

살기 위해 적는다.

살기 위해 적는다. 두서없이 아무렇게라도 털어놔야 될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고 싶다.


묵직한 무게를 가진 물체가 바닥에 닿으면 나는 소리와 울림이 종일 여과 없이 우리집으로 전달됐다. 어느 누가 들어도 발뒤꿈치로 맨바닥을 찍는 소리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정직한 소리였다. 우리집에 살면 가만히 있어도 근처 초등학교가 방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평소보다 더 크게 더 오래 뛰는 소음이 머리 위로 지나가니까.


아이들은 보통 오전 7시 전후로 일어났다. 가끔은 갓 6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음에 깰 때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네, 로 시작해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매일매일 고통스러웠다. 나의 몸 건강, 정신 상태, 어제의 일정, 오늘의 할 일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기상이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일러 어른이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폭이 짧고 우다다다 우다다다 뛰는 소리가 평소에 우리집 천장을 울리는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지고 늦은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무게와 모양이 서로 다른 아령을 박스에 가득 넣고 한꺼번에 위에서 떨어뜨리는 것 같은 소리와 울림이 위층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전달됐다. 열심히 뛰다가 두발로 착지하는 소음과 위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소음도 불규칙적으로 천장을 흔들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소음은 아무리 작고 규칙적이어도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시계 초침 소리도 시끄러워서 무소음 시계가 나오는 요즘 시대에 초침 소리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와 진동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게 만들었다.


하루를 참고, 일주일을 참고, 몇 달, 몇 년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좀 뛰다가 말겠지, 오늘 늦게까지 안 뛰겠지, 이 정도면 자제시켜주겠지, 기대했는데 위층은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런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뛰는 소음이 얼마나 크게 울리고 아래층을 힘들게 하는지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는데 그냥 두는 거였다. 피해를 받는 건 본인들이 아니니까.


전혀 알고 싶지 않지만 위층이 나가는 시간도 알 수 있었다. 외출을 하기 전에는 나가는 시간 동안 뛰지 못하는 게 아까운 건지 아니면 집이 비는 시간 동안 조용하니까 이 정도 소음은 참으라는 건지 천장이 무너지듯 뛰어다녔다. 돌아와서는 비워둔 시간에 만들었을 소음만큼 열심히 발을 굴렀다.


주변 사람들은 이 정도면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마음으로는 벌써 수백만 번 외쳤다. 제발 아래층 좀 배려해달라고. 아래층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못 했던 이유는 견딜 수 있는 소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집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보복 소음을 내기 때문이었다.


본인들이 아파트에 산다는 걸 망각하고, 아래층에 사람이 사는 걸 잊고, 자기들이 사는 공간이 1층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자비 없이 우리집을 괴롭힐 때는 언제고 조심스럽게 층간 소음에 대한 괴로움을 이야기하면 언제나 더 늦게 까지 뛰거나 더 크게 뛰거나 둘 다 했다. 오랜 기간 원치 않는 소음과 진동으로 고통받을 동안 아래층의 입장을 전달한 건 손가락으로 꼽는데 그때마다 보복 소음이 따라왔다.


아래층은 위층이 뛰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가해자가 휘두르는 대로 피해자는 일방적으로 맞을 뿐이다. 내가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상대가 말은 알겠다고 하면서 주먹으로 치던 걸 멈춘 뒤에 야구 방망이를 쥐고 풀 스윙을 할 걸 너무 잘 아는데 이야기하는 거다. 이 말이라도 안 하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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