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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pr 11. 2020

고요하고 평화로운 천장이 되기를

지속적인 고통에 노출된다는 것

방망이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했다. 6시 40분. 생각보다 이른 시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전부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벽 5시 전후로 일어났다.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바퀴 달린 뭔가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 바퀴 달린 물체가 드르르드드륵 드르르르르륵 가다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 5분에 한 번 어디에서 어딘가로 뛰는 소리 때문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일어나야 할 시간에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깨워줘도 약간의 투정과 짜증 섞인 감정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에 반갑지 않은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려니 여러 감정들이 올라왔다.


7시에서 6시로, 6시에서 5시로 뛰는 소리가 빨라졌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면서 해가 빨리 뜬다. 위층도 거기에 맞게 준비하고 있는 걸까? 자신들의 생활 패턴에 맞게 아래층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른 층간소음에 더 지쳐갔다. 그래서 6시 40분에 방망이로 두들기듯이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어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슬펐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 현실이 너무 슬펐다.


여태 위층이 내는 소음은 미친 듯이 찍어대는 발망치와 무게가 다른 아령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 같은 아이들의 뜀박질이 주를 이루었는데 요즘은 바퀴 달린 물체가 구르는 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가 추가됐다. 이제 우리 집에서 가만히 있어도 위층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고 식탁 의자를 이용하는 시간도 알 수 있게 됐다. 주로 식사를 할 때 식탁 의자를 사용할 텐데 그때도 아이들 뛰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누군가는 계속 뛰고 누군가는 필요에 따라 의자를 끈다. 


뛰는 소리가 종일 들리니까 의자 끄는 소리가 났을 때 의자에 소음 방지 패드도 안 붙인 건가? 그동안 이 소음은 안 났는데 누구 약 올리는 건가? 이런 생각보다 기대가 됐다. 이제 밥 먹는 건가? 그럼 앉아있으니까 조용하지 않을까? 이런 희망을 가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 오늘도 고요한 우리 집에 흥에 겨워 지르는 목소리가 뛰는 울림과 함께 들렸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서 평일에도 아래층을 미치게 하더니 주말에도 이웃을 배려할 생각은 전혀 없나 보다. 얼마나 질러야 목소리를 벽 너머로 보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침부터 바닥에 절구를 대고 마늘을 빻는 것 같더니 중간중간 점프를 하며 뛰는지 벽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3시부터 소음이 멈췄다. 나갔나 보다. 갔다 오면 그동안 못 만든 소음을 만들어 내느라 또 열심히 발망치질 하겠지. 조용히 나갔다가 조용히 들어올 수는 없는 걸까, 왜 그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위층의 외출 여부를 알고 싶지 않다.


지속적인 고통에 노출된다는 건 비정상적인 상태가 너무 당연해져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상해도 이상하다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의지를 점점 깎아내고 누르고 박살 내는 것 같다. 층간소음이 없는 상태가 너무 당연해서 새벽이든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내 의지대로 일어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만큼 수면을 취하고 싶다. 오늘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천장이 되기를. 앞으로도 계속 그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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