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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y 02. 2020

위층의 마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피곤해서 일찍 잠에 들었다. 발망치 소리에 정신이 점점 깨어났다. 벌써 아침이구나 싶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알람이 울리려면 몇 분 남았지? 몇 분 더 누워있을 수 있을까? 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12시 5분이었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올라왔다. 다시 자기 위해 이불을 머리에 덮었다. 머리를 이불로 싸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위층이 뛰어다녔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정말 더 자고 싶었는데 새벽 6시에 일어났다. 그때부터 천장이 발망치 소리로 가득 찼으니까. 위층은 주말과 공휴일에는 더 잦고 큰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평일에 조용한 건 절대 아니다. 달력에 휴일과 공휴일이 겹치지 않고 이어지는 날이면 기분이 좋다가도 금세 암울해졌다. 휴일이 휴일 같지 않으니, 종일 층간소음을 견딜 생각을 하니 괴로웠다.


원치 않은 기상을 하루에 2번이나 겪었더니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피곤했다. 위층이 뛰는 소리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통해 차 지나다니는 소리라도 집으로 들어오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소리는 별로 안 들리고 달리는 소리만 지속됐다. 아이들이 번갈아가면서 뛰는지, 휴일이라 에너지가 더 넘치는지 쉬지 않고 달렸다.


저녁 5시 30분쯤, 평일에 마스크를 사지 않은 게 생각났다. 사러 갔다 오는 동안 층간소음을 피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부랴부랴 옷을 입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계단식 아파트가 아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바로 이어져 있고 문도 따로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 다른 층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르고 싶어도 다 들릴 수 있게 뚫려있다.


신발을 고쳐 신는데 위층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꾀죄죄한 모습으로는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 싫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 말았다. 위층 가면 가야지. 누군가 대화를 하면서 나오고 있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위층 아주머니 목소리였다. 아주머니가 다른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셨다. 서로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도 계단을 통해 울렸다. 사람을 초대했었구나. 우리집 천장이 놀이터가 됐었구나. 여태 계속 주말에 사람들을 초대했었을 수도 있겠네. 준비한다고 설렜던 건가. 그래서 12시부터 쿵쾅거렸나.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우리집이 피해자인데 여태 위층의 행태를 생각하니 괜히 숨죽이게 됐다.


대화 내용은 집안에서 했던 얘기의 연장인지 다 들려도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갔고 기억도 안 난다. 들은 말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 여자 친구가 알려줬는데 였나, 줬는데, 였나 그런 대화였다. 우리 집 천장을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아이 중 한 명의 이름을 이렇게 듣게 되다니. 하나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같이 탔는지 조용해졌다. 바로 타고 내려가면 마주치니까 우리 층 엘리베이터 앞에 3분 정도 서있던 것 같다. 


초대받은 다른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갔는지, 근처에 살아서 다른 쪽으로 갔는지 모르겠으나 대문을 나서니 아파트 정문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위층 아이들과 그 뒤에서 걷고 있는 위층 부모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스크를 사고 돌아왔다. 아직 위층은 외출 중인지 천장이 고요하다. 조금이나마 미안해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대화를 하면서 본인들의 여가 시간을 즐기고 있었구나. 언제나 그랬듯 외출하고 오면 빈 시간 동안 못 뛴 억울함을 풀듯이 또 뛰어다닐까? 학습된 예감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니기를 바라면서. 윗층이 외출한 시각.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오랫동안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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