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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Jun 13. 2020

멈추지 않는 소음을 피해 밖으로

복도, 계단, 벤치 그리고 친구네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생활 패턴이 다르다. 그중 새벽 4시와 5시 사이 가끔은 더 빨리 일어나는 부지런한 사람 덕분에 매일 새벽부터 우리 집 천장은 꿍꿍꿍꿍 울린다. 바로 옆에서 울리는 폰 알람보다 격한 진동으로 내 정신을 흔들어 깨운다. 주말에는 늦게 일어나는지 시간이 뒤로 좀 늦춰질 때도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은 새벽 6시부터 위층에 사는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같이 들렸다. 거실과 방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달리는 울림이 발망치 소리와 함께 했다. 꿍꿍 거리는 발망치 소리와 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우다다다우다다다 뛰는 소음을 애써 모른척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 날 주말엔 친구네 집에 찾아갔다. 사방에서 울려대는 층간소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고, 친구는 흔쾌히 괜찮다고 해줬다.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나온 동선과 엮이는 곳은 없는지 확인을 하고 또 했다. 확인의 확인을 거쳐 서로 안전하다는 판단하에 방문했다.


  최대한 집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었으나 요즘 시국에 그건 불가능했다. 카페도 좋은 대안이었지만 밀폐된 공간이라 망설여졌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벤치는 오픈된 공간이라 시도해봤으나 날아다니는 벌레와 기어 다니는 벌레, 큰 벌레와 작은 벌레 등 온갖 벌레들이 자주 등장했고 흡연하는 분들이 벤치 근처로 자주 오셔서 피하게 됐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담배 태우는 연기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고 흡연하는 사람이 없어도 재떨이에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에서 담배 특유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나에게 왔다. 단지 내 흡연 구역이었나 보다.


  소음을 피해 아파트 복도를 서성이거나 복도에 있는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할 일을 하기도 했었다. 집에 멀쩡한 의자와 책상을 두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차가운 계단에 불편하게 앉아 뭔가를 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 마스크 끝이 조금 축축해졌다. 현관까지 달려 나왔다가 되돌아 가는지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뛰는 진동이 현관문 밖에 있는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여기서도 느껴지다니, 충격을 받고 공용현관 쪽 계단도 잠깐 이용해봤으나 냉하고 쾌쾌한 공기가 가득한 공간에 나 홀로 버려진 기분이 들어 30분 남짓 있다가 되돌아 갔다. 


  윗집이 인터폰을 무시하고 더욱더 오랫동안 큰 소음을 만들어내며 우리 집을 괴롭히는 상황을 맞닥뜨리니 벤치와 복도는 이 사태가 지속되는 한 긴급책으로 몇 번 더 활용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벌레와 담배 냄새와 냉하고 쾌쾌한 공기와 찬 바닥의 온도를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는데 말이다.


  친구네 집 근처에 거대 복합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공사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이른 아침부터 진행됐다. 친구는 마치 컨테이너를 던지는 것 같은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어온다고, 새벽에 깜짝 놀라 일어났었다고, 창문을 닫으니 나아졌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 탓에 조금 연 창문으로 들어오는 뭔가가 지어지는 공사 소음과 함께 친구가 하는 말을 들었다. 아주 가끔 흠칫, 하게 되는 큰 소리가 들렸으나 진동이 오는 것도 아니고 지속되는 것도 아니어서 견딜만했다. 파편음들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나는 저 소음을 들으면서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정도면 잠은 그래도 잘 수 있겠다. 이어폰을 꽂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겠다. 노래를 크게 틀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겠다. 깨지 않고 잘 수 있을 정도의 소음이었다. 들으면서도 내가 하는 일에 아무런 방해받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소음이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쇠와 쇠가 부딪히는 공사 소리도 몇 시간 안 가 멈췄다. 공사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는 친구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이런 소음에 놀랄 만큼 고요한 상황에 익숙한 친구가 부럽기도 한, 이상하고 복잡한 양가감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이 지나 친구가 세탁기를 돌릴 건데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세탁기 돌리는 거랑 내가 괜찮은 거랑 어떤 연관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시끄러울 텐데 괜찮겠냐고 친구가 말했다. 세탁기가 엄청난 소음을 내며 돌아가나 보다 싶어서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이게 웬걸, 그냥 평범하게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였다. 덜커덩거리거나 어디에 걸린 것처럼 세탁기가 좌우로 움직일 정도로 진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돌아가는 세탁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몇 번 퉁- 퉁- 울리는 소리가 났지만 세네 번 정도 아주 잠깐 덜컹거린 소리가 끝이었다. 그때 표현은 크게 하지 못했지만 시끄러울 텐데 괜찮겠냐고 물어봐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밤 9시 30분쯤 집으로 돌아왔다. 이쯤이면 조용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여전히 뛰고 있어서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왔다. 아파트 계단에서 서성이다가 계단에 잠깐 앉았다가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위층을 올려다봤다. 암막 커튼 때문인지 불을 끄고 뛰는지 깜깜했다. 괜히 봤다. 단지 밖으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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