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정윤 Jun 27. 2020

아파트를 검색하고 알게 된 것

빨리 현실로 나오라는 듯 누군가 자꾸 천장을 노크했다.

검색창에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검색해봤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타자를 두드린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사를 간다면 어디로 갈 수 있을지, 근처에는 어떤 아파트들이 세워져 있는지, 보건소나 주민센터가 가까운 지역은 어디인지, 대형 마트나 창고형 마트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버스나 역과 가까운 동네는 어디일지 궁금했다. 상상만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그러면 마음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혹시 정말 좋은 기회가 생겨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다면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정하고 싶어서, 그래서 아파트 이름을 치고 엔터를 눌렀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아파트가 나오면 지도를 클릭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넓고 전체적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검색창에 뜬 화면을 확인하고 좀 놀랐다. 지도는 '부동산'과 연결돼 있었다. 아파트 매물과 전월세 현황, 별점, 지역 내 아파트 중 인기순위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포털 사이트에도 같은 검색어를 넣고 검색해봤다.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파트 평면도를 알 수 있었고, 현재 시세와 실거래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도에 있는 마우스 오른쪽 버튼이 손바닥 모양으로 활성화됐다. 익숙했던 공간들이 지도 위에 펼쳐지면서 말풍선 위에 억 단위 숫자가 튀어나왔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익숙하게 봤던 건물들이 돈으로 환산돼 컴퓨터 화면 위로 펼쳐졌다. 이사를 가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하는 호기심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마우스로 지역을 이리저리 옮겨보고, 어떤 아파트를 눌러보고, 거기에 쓰인 리뷰를 읽어보고, 첨부된 사진을 보며 정신없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비했다. 어떤 아파트들은 VR로 해당 공간을 볼 수도 있었다. 마우스를 가져다 대면 화살표가 나왔다. 가고 싶은 방향의 화살표를 누르면 그 공간에 내가 들어가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다. 지나다니면서 봤던 아파트들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구나, 이 정도 가격으로 거래되는 아파트는 이런 구조를 지녔구나, 여기에 살면 이런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역이랑 걸어서 5분도 안 되네, 좋겠다, 시끄럽겠다, 이런 편의 시설과 가깝다니, 배달하지 않고 걸어 나가서 먹거나 포장하면 되겠다, 여기는 마트도 있고 병원도 있고 영화관도 있고 다 도보로 다닐 수 있겠다, 근처에 공원도 있네, 운동장이랑 가깝다, 우리 집 근처에 생겼으면 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열심히 클릭을 하고 감탄을 하고 마음껏 부러워했다.


그러다 몇십 분쯤 지나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말풍선 위에 떠있는 '집값'을 제대로 확인했다. 그래프로 보여주는 시세 현황을 보고 아파트 중 인기 순위는 몇 위에 위치해 있는지 세어봤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순위를 보고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화면에 뜨는 수십 개의 말풍선에 쓰인 숫자를 보고 괜히 서글퍼졌다.


사실, 층간소음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말풍선에 쓰인 숫자와 인기 순위는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굳이 다른 곳으로 눈 돌리고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에 나름 만족한다. 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점도 있고 이런 것들은 조금 더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도 있고 이건 없어지고 저건 생겼으면 하는 시설도 있으나 살면서 익숙해진 탓에 아직까지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지도 창을 닫고 검색창에 '집값'을 검색해봤다.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사겠으나 요즘 더욱더 뜨거운 키워드로 떠오른 만큼 자극적인 타이틀을 단 뉴스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기사 몇 개를 클릭해 읽고 다시 창을 닫았다.


다시 검색창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치고 말풍선이 쓰인 지도를 열었다.


세상에 아파트는 이렇게 많은데 우리 집은 왜...라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다가 그래도 이만하면 좋지 뭐...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가 그래프 수치와 집값이 동시에 떠올라 마음이 심란해졌다가 변함없는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빨리 현실로 나오라는 듯 누군가 자꾸 천장을 노크했다. 아까부터 급박한 상황이 있는 것처럼 발로 천장을 불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층간소음도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아예 차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창을 완전히 닫았다.



이전 04화 일요일 저녁을 복도에서 보내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