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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Jul 10. 2020

피할 수 있으면 시간도 피해 도망가고 싶다

발망치 소리가 자정 넘어 들렸던 이유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면 위층은 고요해졌다. 매일 그랬다는 건 아니고 대부분 그랬다. 밤 11시가 넘어가면 자는 것 같았다. 불규칙한 소음 속에서 그나마 잠들 때만큼은 조용하게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면서 반쯤 감긴 눈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걷는 소리가 늦은 밤에도 들렸다. 발망치 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릎을 최대한 높이 들었다가 바닥을 향해 내리찍는 것 같은 소리가 걸음걸음마다 났다. 잔뜩 화가 나서 발을 쿵쿵거리며 자신의 불만을 온몸으로 표출 해 걷는 모습에서 날 법한 소리가 천장을 두드렸다. 땅에 발을 디딜 때 유독 남보다 큰 발소리와 울림을 갖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안다. 의문인 건 몇 년 동안 전혀 들리지 않았다가 최근 들어, 오랜 기간 소음을 참다가 위층에 이야기한 뒤에 이런 소음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꿍꿍꿍꿍꿍.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지 아래층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회피를 위한 회피를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위층에서 멈추거나 위층에서 소리가 나면 계단을 이용하거나 재빨리 집에 들어갔다 나온다. 아파트 현관이나 주차장을 비롯한 동네에서 혹여나 마주칠까 봐 시선과 고개를 아래로 떨구는 일이 잦아졌다.


쪽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위층에 남겼다. 쪽지 이후에 뭐가 변했을까. 이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층간소음분쟁위원회에 신고하거나 뛰는 소리와 동시에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심장과 대책 없이 흐르는 눈물로 진단서를 받은 뒤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일밖에 없어 보였다. 우리 집은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른 새벽에 나가 자정 즈음 퇴근하고 있다. 밤 11시에 들어와도 천장을 울리는 소리가 지속되면 밖으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잤다. 새벽에는 내 알람보다 먼저 나를 깨우는 발소리 때문에 강제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날이 많았지만 퇴근 후에는 비교적 고요히 잘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적게는 3시간, 많게는 5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지만.


그런데 '며칠 전'부터 밤 11시, 12시가 넘어가도 아침에 울리는 발소리가 그때도 들렸다. 잘 때 이어폰을 꽂으니 너무 불편해서 이불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이불을 두껍게 말아 얼굴 부근에 덮을 때도 있었다. 여름이라 얇아서 그저 덮는 행위로는 소음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둥글게 말아 얼굴을 그 안에 넣고 눈을 감았다.


매트가 있다면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인지, 사람이 많으니 식구 따라 발소리가 달라 그런 것인지,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은 맨바닥을 누구는 그냥 뛰고 누구는 아주 얇은 슬리퍼라도 신고 뛰는지, 발이 아닌 다른 물건을 바닥으로 던지며 생활하는 것인지 불분명한 소리들이 하루하루를 반복해 채웠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져서 늦게 까지 안 자고 있는 걸까? 생활 패턴이 또 바뀐 건가? 그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꿍꿍 거리는 소음을 피해 다녔는데 오늘 이유를 알게 됐다.


가족이 '며칠 전'에 위층에 사는 분을 우연히 만나 말씀드렸다고 한다. 어땠는지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답변을 매일 밤 듣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위층은 또 다른 소음을 만들어 내는 중이었구나. 항상, 언제나, 그랬으므로. 고통스럽다고 이야기를 하면 주먹으로 치다가 무기를 양손에 쥐고 무자비하게 패는 것 같았으므로. 우리 집은 그럴 때마다 그저 감내해야 했기에 이해가 갔다. 기분이 나빴나 보다. 본인들은 각자의 생활을 할 뿐인데 괴롭다고 하니, 오랜 기간 힘들었다고 하니 마음이 상했나 보다.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화난 듯이 바닥을 찍는 행위를 또 추가해 이어나가나 보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여기에도 적용될까?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됐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 집에서 뛰는 것보다 쉬는 걸 더 원하게 되면 뭐가 달라지긴 할까? 몸집이 더 커져서 걸음마다 더 큰 울림이 우리 집을 울릴까? 벗어나고 싶다. 피할 수 있으면 시간도 피해 도망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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