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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Jul 18. 2020

여기 진동음 하나 추가요

이럴 거면 뭐하러 밖에 있었을까. 바로 들어올걸.

해가 길어져서 위층이 자는 시간도 늦어졌나 보다. 최대한 늦게 귀가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요즘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쿵쾅대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어쩔 때는 새벽 1시까지 자지 않고 울림을 아래층에 전달해준다. 뛰지 않는다. 걷는다. 화난 사람처럼 바닥을 찍으며 걷는 것 같다. 가끔 뛰더라. 이건 애들이 뛰는 거겠지? 설마. 물론 사람이 살면 걸으면서 활동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런 소음은 '층간 소음'에 대해 위층에 언급을 한 후에 새롭게 생긴 소음들이라 더 고통스럽다.


소음 자체도 굉장한 스트레스지만 위층이 막 이사 온 것도 아니고 아파트도 뭔가 변한 게 아니니까. 여태도 여러 생활들을, 평범한 일상생활들을 하면서 지냈을 텐데 도대체 들리지 않던 소음이 왜 들렸는지 의문이다. 찡 달린 신발이라도 신는 건지, 걸으면서 뭔가를 내려치는 건지 의문이지만 전혀 알고 싶지는 않다. 


밖에서 노숙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으로 최대한 늦게 귀가하고 있는데 몸이 많이 망가지는 게 느껴진다. 수면 패턴이 망가져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눈이 반쯤 감긴다. 충분한 휴식 없이 또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너무 힘들 때는 이대로 쓰러져서 사라졌으면 싶을 때도 있었다. 요즘은 즐거운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다.


늦은 시간까지 발 망치를 울려대니 집으로 들어올 때 가끔 베란다 쪽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암막 커튼 때문에 불을 켜고 생활한다고 한들 보이지 않아서 보든 말든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아파트 입구가 두 군데여서 아파트 베란다가 보이는 쪽 말고 다른 쪽으로 들어올까 싶었는데 그러면 빙 돌아가는 모양이라 피곤해서 대부분 이 루트를 이용한다. 굳이 확인 안 하고 이러나저러나 변하는 게 없는데 바로 들어가나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된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엊그제 들어올 때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자 위층을 봤는데 암막 커튼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빨리 집으로 들어가서 눕고 싶은데 들어가면 천장을 쿵쿵 거리며 울리는 발 망치 소리가 두려워서 30분 정도 아파트 벤치에 앉아있었다. 모기는 웽웽거리고, 근처에 담배 피우러 나오시는 분들도 있고, 피곤하고, 어둡고, 시간은 오늘이 끝나가고. 이 정도면 됐겠지 싶었는데 아직도 빛이 새어 나와서 그냥 들어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벤치에서 잘 것 같아서.


웬일로 조용했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소리만 들렸을 뿐 고요했다. 그런데 잘 준비를 하는데 진동 소리를 들었다. 진동모드인 폰이 계속 울리는 듯했다. 드릴이나 리모델링할 때 기계로 전달되는 진동이 우리 집을 울린 적은 있었어도 핸드폰 진동이 이렇게까지 전달된 적은 처음이었다.


핸드폰이 최근에 발명된 게 아니고, 위층 사람들이 핸드폰을 처음 사용하는 게 아닐 테고, 진동모드인 폰을 바닥에 이번에만 놓은 게 아닐 텐데 폰 진동이 5분 정도 계속 천장에서 우리 집으로 전달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도대체 위층은 뭘 하는 걸까.


진동 소리가 너무 가까이 들리고 생생해서 처음에는 내 전화인가 싶었다. 그러다 가족한테 오는 건가 싶어서 거실로 나갔는데 진동 소리가 작아졌다. 끊기지 않고 계속 울렸다. 폰이 없어져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했다. 5분 동안 계속 전화를 하면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도 생각했다. 하필 진동이 너무 잘 전달되는 방향에 폰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폰만 찾으면 곧 끊어지겠지, 생각했다. 이불을 두껍게 돌돌 말아 얼굴에 덮었다.


진동과 진동 사이의 간격이 굉장히 짧았다. 위층 사람들이 진동 패턴을 어떻게 놓고 사용하는지도 내가 알아야 되는 건가? 웅-웅-웅- 진동 소리 따라서 발걸음도 코쿠웈오카왘왘오쿵 거리다가 10분 뒤에 잠잠해졌다. 이럴 거면 뭐하러 밖에 있었을까. 바로 들어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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