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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Jul 04. 2020

위층에 층간소음 쪽지를 남겼다

누가 나를 여기서 꺼내 줬으면 좋겠다.

몇 주 전, 층간소음과 관련된 쪽지를 위층에 남겼다.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는 소음에 둘러싸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 어떻게 하지, 뭘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렇게 하면 상황이 더 나아지긴 하려나, 오히려 역효과만 생기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답변들은 모두 최악의 상황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위층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으니 너무너무 두려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근본적인 해결책 외에 다른 일들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일시적을 뿐이었다.


그러다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는 친구가 쪽지를 남겼는데 잘 해결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잘 해결됐다는 말은 쪽지를 받은 상대방도 충분히 소음을 내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고, 미안해하고 있고, 소음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같다'를 붙인 이유는 여태 그랬으나 앞으로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서 사용했다. 만약에 내가 우리 집인데 이 정도 소음도 못 내냐! 하는 마음으로 어느 순간 돌변해버리면 걷잡을 수 없이 다시 소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게 되니 단정하기 어렵다. 어쨌든, 그 이웃은 좋은 분이었다.


친구의 경험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용기가 생겼다. 실행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고민만 해왔던 일을 이제는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하늘이 말해주는 듯했다. 쪽지 내용은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고 당일에는 몇 시간 동안 매달려서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랐다. 내용은 보고 수정하고 다시 보고 수정하고. 정중하게, 온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 작성했다.


이 날도 소음을 피해 자정 가까이 퇴근을 했다. 위층에 쪽지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쪽지를 남기면서 심장이 정말 빨리 뛰었다. 이 행동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괜히 내가 일을 더 크게 만들면 어떻게 하지. 올라가는 다리와 쪽지를 남기는 손이 달달 떨렸다. 내려올 때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 새벽 발 망치 소리를 들으며 알람보다 일찍 깼다. 구질구질하지만 솔직하게 써야겠다.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출근 전에 위층에 올라가 봤다. 쪽지는 붙어있었다. 누군가 가져가지는 않았겠지? 위층에 살고 있는 분들이 보시겠지? 쪽지 확인도 계단에 기우뚱하게 서서 했다. 보는 도중에 현관문 소리가 나오면 바로 몸을 피하려고. 그렇게 쪽지가 잘 붙어져 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 근처에 서 있었다. 정말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어디선가 문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다시 확인했다. 쪽지가 없어졌다. 가지고 들어갔나보다. 걱정과 희망으로 뒤섞인 마음을 안고 출근했다.


하루 이틀은 조용했다고 한다. 쪽지를 남기고 상황을 지켜보려면 제시간에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는데 무서워서 나는 똑같이 생활했다. 상황을 피해버렸다. 그래서 어떤지 가족한테 들었다. 하루 이틀은 뛰긴 뛰지만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고, 소음이 짧게 들렸다가 멈췄다고 했다.


하루 이틀. 그뿐이었다. 쪽지를 붙이고 몇 주가 지났다. 변한 게 있을까. 뭐가 변하기는 한 걸까.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정말 방법을 모르겠다. 밥 먹는데 눈물이 자꾸 나온다. 밖에 있어도 눈물이 나온다. 미친 것 같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힘든데 육체적으로 너무 아프다. 일도 갑자기 몰려서 처리하는데 정신이 없다. 이번 주말은 쉬고 싶었다. 집에서 자고 싶었다. 누워서 편하게 자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출근하지 않았다. 일부러 새벽 알람을 꺼뒀는데 새벽마다 울렸던, 알람보다 나를 먼저 깨웠던 소음을 피하고 싶은지 눈이 떠졌다. 이른 새벽에 2번 깼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잤다. 출근 시간 비슷하게 눈이 떠졌을 때 그냥 갈까 싶었지만 집에 있었다.


활발하게 진행되는 공사장 한가운데서 밥을 먹었다. 뛰기 시작해서, 천장이 울리기 시작해서 빨리 먹고 나가고 싶은데 전자레인지에 돌린 햇반이 뜨거웠다. 뜨거워서 눈물이 나왔다. 빨리 나가야 하는데.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데 밥은 왜 또 이렇게 뜨겁고 내 입천장은 왜 까지는지. 오늘 종일 밖에 있었다. 할 일을 잔뜩 들고 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앉아서 졸고 일 하고. 그 와중에 배고파서 다시 집에 왔다. 배고픈 내가 싫었다. 몇 시간 동안 뛰는 건지. 밥을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밥을 꾸역꾸역 삼키는데 목구멍이 너무 아팠다. 딱딱한 의자에 오래 앉아있었더니 엉덩이도 아팠고 허리도 아팠다. 모든 걸 '아팠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내 어휘력이 통탄스럽다. 거미가 마스크와 옷을 타고 지나갈 때는 소리 지르면서 떼기도 하고 손바닥만 한 나방도 봤다. 거미를 터는데 눈물이 나왔다. 내가 앉아있는 곳 근처에는 사람이 없어서 소리 내 울었다. 우는 게 답답한데 정말 싫은데 나도 모르겠다.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건가 이렇게 합리화해야겠다.


벤치에 앉아있는데 문득 여름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겨울 걱정을 하게 된다. 겨울에는 장갑 끼고 패딩 입고 여기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그전에 뭐든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이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진짜 모르겠다. 지금도 뛴다. 누가 나를 여기서 꺼내 줬으면 좋겠다. 지금도 뛴다. 빨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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