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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Jun 14. 2020

일요일 저녁을 복도에서 보내면서

소음의 주범은 따로 있었나

오전 5시부터 천장을 찍는 발망치를 들으며 일어났다. 주말에는 좀 나은 줄 알았더니 시간도 소음도 랜덤이다. 층간소음을 피해 어제 자체 주말 출근을 했기 때문에, 평일을 포함해 요즘 내내 새벽같이 나가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돌아왔기 때문에, 몸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피곤하기 때문에 오늘은 나가고 싶어도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쉬고 싶었다.


위층에 사는 사람은 뭘 하는지 쉬지도 않고 돌아다녔다. 중간에 애들도 깼는지 역시 또 뛰어다니고. 옷을 챙겨 입고 오전 7시쯤 밖으로 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2시간 정도밖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오전 10시 10분까지 걷고 뛰는 소리가 우리집을 울리다가 멈췄다. 위층에 사는 가족 모두 밖으로 나갔나? 싶었지만 가끔 잔잔하게 뛰는 소리가 우리집을 울렸다. 잔잔하게 뛴다고 해서 시끄럽지 않은 게 아니다. 아마 누군가 듣는다면, 해 뜬 시간이어도 이거 좀 심각한 거 아니야? 말해봐야 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일 것이다.


뛰는 소리를 자동차 소음으로 중화시키고자 창문을 열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눈꺼풀이 자꾸 감겼다. 낮잠을 잤다. 오랜만에 쉬고 싶은 내 마음과 다르게 한 시간도 못 자고 우당탕탕탕타탕탕 뛰는 소리 때문에 일어나버렸지만.


머리가 너무 아프고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후 5시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날씨는 맑고 더웠다.


7시에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집밥이라니. 부엌에서 저녁을 먹는데 그 시간에도 쉬지 않고 뛰어다녀서 우리집 바닥이 웅- 웅- 거리며 울렸다. 이 소음을 막고자 거실에 텔레비전 소리를 올렸는데 울리는 소리와 텔레비전 소리가 섞여 더 고통스러웠다. 시간에 쫓기는 급한 일도 없는데 밥을 5분도 안 돼서 다 먹었다. 맛을 느끼기 보다 살려고 먹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밥과 반찬을 욱여넣었다.


평소에도 너무 시끄러운데 8시부터 어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지 쾅!! 꽝!! 다다!!! 다다다다!!!! 쾅꽝쾅!!!!!!!!!소리와 온 체중을 다해 바닥을 찍어대며 뛰는 소리가 내가 있는 방을 가득 채웠다. 거실로 나가도 상황은 변함없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윗집은 며칠 전 밤 9시 30분까지 뛰길래 인터폰을 넣었더니 받지 않고 밤 11시 30분까지 뛰는 걸로 답변을 대신했고, 몇 년 동안 미칠듯한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말만 하면 보복 소음을 내고, 올라가면 본인들 할 말만 하고 현관 인터폰을 끊어버렸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다.


아파트 복도에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읽을 만한 책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사람이 지나다녀야 불이 켜지기에 계단에 앉아있다가 일어서서 다시 불을 켜는 행동을 두세 번 반복하다 다리가 아파서 아예 복도를 서성거렸다. 누가 된장을 푸고 어디에 숨겨놓은 것 같은 꼬릿한 냄새가 숨을 쉴 때마다 느껴졌다. 불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계속 꺼졌다. 점멸하는 등 아래에서 책을 보고 있으니 눈이 피로하고 아팠다.


9시쯤 됐을까, 위층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던 대로 불이 켜지길 바라며 움직이면 되는데 위층에서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부터 몸이 나도 모르게 굳어졌다. 내가 있는 복도의 불이 꺼졌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당장 쫓아 올라가서 그만 뛰어 달라고, 우리 집 좀 배려해 달라고, 매트를 깔든 실내화를 실든 소음을 멈춰 달라고, 아래층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만 내 심장이 정말 빠르게 뛰었다. 지금 올라가면 마주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올라갈까. 말까. 엘리베이터가 위층에서 멈췄다가 내려갔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다가 집으로 들어가 밖을 봤다. 아파트 공용 현관으로 누가 나가는지 봤다. 위층에 두 가구가 사는데 바로 윗집이 아니라 그 옆집일 수도 있으니까.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위층 아저씨가 나갔다. 어쩐지 애들 소리가 안들리더라. 다시 복도로 나갔다. 그러고 1분쯤 지났을까? 또 위층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났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밖을 봤다. 이번에는 바로 윗집이 아니라 그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 것이다. 자꾸 꺼지는 불빛 아래서 불편하게 책을 읽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다시 위층에 멈췄다.


언제 들어갔다 나왔는지 위층 아저씨는 다시 집에 들렀다가 밖으로 나가고, 그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는 집에 들어오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나 보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하하하 네 안녕하세요. 하하하


웃다니. 나도 웃고 싶다.


애써 별로인 기분을 떨쳐내며 다시 책을 읽고 있는데 집에 있던 가족이 나와서 이제 조용하니 들어와서 쉬라고 전해줬다. 여기서 조용하다는 건 정말 조용한 게 아니라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줄어들고 간헐적으로 꿍꿍 거리며 걷는 소리만 남았다는 뜻이었다.


방으로 들어왔다. 아저씨가 나가니까 그나마 조용해졌다. 아저씨가 없으니까 어디서 떨어지는 소리, 미친듯이 발 구르는 소리가 멈췄다. 물론 잔잔하게 뛰는 소리와 꿍꿍 거리는 소리가 10시까지 우리집을 울렸지만 8시부터 사람 돌아버릴 정도로 내려치듯 쿵쾅되는 소리가 사라졌다.


전에 이런 내용을 기록한 적이 있다.

윗집은 집에 없는 동안 소음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게 억울한지 외출하기 전에는 평소보다 더 심하게 뛴다고.


사실 범인은 아저씨였던 걸까? 발망치 소리의 주범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뛸 때 같이 뛰었거나 아이들이 뛴다는 핑계로 발에 온 체중을 실으며 우리 집 천장을 울렸던 걸까? 오죽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의심이 머리 위로 지나갔으나 지금 막 애들 뛰는 소리가 머리 위로 지나가서 더 이상 깊게 생각하기를 멈춰야겠다.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 31분. 높은 곳에서 아령 여러 개를 바닥으로 낙하하는 것 같은 소음이 들린다.


위층 바로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를 봬면 우리집이 받고 있는 고통을 전달해도 괜찮을까?

가까이 사는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전달해주세요. 제발, 알아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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