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논-픽션>, 2018

올리비에 아사야스

by 전하민

브런치무비패스 시사회 영화리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능력 있는 편집장 알랭(기욤 까네)와 그의 아내이자 배우 셀레나(줄리엣 비노쉬), 정치인 비서관 발레리(노라 함자위)와 그녀의 남편인 레오나르 (빈센트 멕케인) 그리고 알랭이 고용한 북 마케터 로르(크리스타 테렛)의 일과 사랑을 그린 프랑스 영화다. 문학과 출판업, 전자책에 대한 갑론을박이 관객들에게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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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의 변화에 대한 담론이 영화 곳곳에서 펼쳐진다. 아마존의 킨들로 책을 읽는 것을 비웃는가 하면, 읽고 싶은 책이 산처럼 많은 여행 중의 노인 여성이라는 구체적 인물을 사례로 들며 전자책의 효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오디오북의 등장도 새로운 화두다. 또 전자책의 적정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등장한다. 제조 비용이 들지 않기에 훨씬 더 내릴 여력이 있지만, 너무 낮은 표면 가격이 책의 가치까지 절하시킬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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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의 메인 주제도 흥미롭다.

문학의 현실 복제는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레오나르의 소설은 우울하고 냉소적이지만 그 안에 자리한 따듯함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다른 작품이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작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소설에 차용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외모가 비슷하고 사는 아파트가 같은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을 반복한다. 영화관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고 불륜을 저지르는데, 대상의 이름과 영화 제목만 교묘하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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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둘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소설은 현실을 재현하려는 시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그들의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그대로 반영시킨다면, 도덕적인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얼핏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을 쓴 트루먼 카포티를 떠올리게 한다. 그 또한 말론 브랜도의 정신과 치료를 작품에 사용하여 그의 이미지를 망가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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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치정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문학과 출판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고 간다. 불륜인 알랭와 로르는 옷을 다 벗고 출판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셀레나는 사랑하는 레오나르의 신작 출판 계약을 위해 남편을 교묘하게 설득한다. 심지어 레오나르와 셀레나가 이별을 맞는 카페에서 대화를 통해 그들의 관계가 약 6년가량 지속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둘이 작가와 유명 배우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관계는 잠깐의 실수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각자의 배우자를 속이는 고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지속해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랑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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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아름다운 바다에 면한 별장에서 다시 만난다. 오는 길은 어땠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발레리는 실수인지 의도인지 ‘레오나르가 와 본 길이라 괜찮았다.’고 답한다. 그 시기는 알랭이 일본에 가 있던 시기였고, 얼떨떨한 분위기는 금세 책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여행의 마지막에 발레리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남편 레오나르에게 알린다. 몇 차례 인공 수정이 실패하고 단념했던 일이었기에 둘의 기쁨은 더욱 크다.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국면이 시작되리라는 점,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아직 겪어보지 못 한 신비들이 남아있다는 점은 다소 희망적이다. 비록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고, 삶의 어떤 부분에서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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