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레이 베이>, 2019

슬픔을 견디기만 해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by 전하민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영화리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악이 꿈이었던 사치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꿈 대신 사랑을 선택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은 마약 중독에 빠졌고, 다른 여자의 품에서 죽는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피아노 바가 꽤 성공하고, 두 모자는 고급스러운 집에서 데면데면 살아간다. 성인이 된 아들은 서핑을 하러 하와이의 하나레이 해변에 간다. 그리고 상어에 물려 죽는다.



아들이 해변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장면이 바뀌어 신경질적인 벨 소리가 울리고, 여자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곧장 하와이로 간다. 경찰과 카운슬러와 얘기하는 동안 그녀는 담담한 표정이다. 아들을 잃은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하고, 상어 이빨 자국이 보이는 아들의 허벅다리를 보고도 울지 않는다.

카운슬러는 아들의 시신을 화장하기 전에 손도장을 찍으라며 설득한다. 그게 나중에 위안이 된다며. 여자는 거절하지만 혹시 모르니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주겠다고 한다. 일본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아들의 시신을 연상시키는 듯한 커다란 서핑 백을 보고 그녀는 마음을 바꾸어 1주일을 머문다. 간단히 장을 보고, 아들이 발견되었다던 해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울창한 푸른 나무들 사이에서.



10년 후, 그녀는 일본에서 온 두 명의 젊은 서퍼를 만난다. 아들이 죽을 당시 나이와 비슷하고 텐트에서 지내며 고생하는 그들에게 숙소를 소개해준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바에서 젊은 서퍼와 퇴역 미군 사이에 싸움이 나고, 서퍼가 그녀 욕을 하는 미군에게 덤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는 마음을 연다. 그들은 그녀에게 서핑하는 법을 알려주고, 그녀도 마침내 미소를 보인다. 10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찾아온 작은 즐거움이 그녀의 슬픔을 조금은 옅게 만든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초현실적 사건이 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원작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다른 작품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정어리 (해변의 카프카)나 그림에서 튀어나온 기사단장 (기사단장 죽이기) 등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두 젊은 서퍼는 여자에게 외다리 일본인 서퍼를 보았냐고 묻는다. 그녀가 항상 앉아있는 해변에서 종종 서핑을 즐긴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조금씩 아들이 죽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단단해진 줄 알았던 그녀의 마음은 다시 요동친다. 외다리 서퍼를 본 적 있냐며 마트 직원에게 물었더니,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데 서핑을 할 수 있겠냐는 대답을 듣고 그녀는 해변을 미친 듯이 걸으며 아들을 찾는다. 그리고 울창한 숲에 이르러 결국 폭발한다.



그녀는 아주 오래된 나무를 밀며 화를 낸다. 가녀린 두 팔은 부러질 듯 떨리고, 뽀송뽀송했던 피부에는 땀이 맺혀 흐른다. 왜 나를 힘들게 하냐며,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거냐며 화를 내지만 나무는 말이 없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안 살림을 던지고 발로 차다가 책상에 놓인 아들의 손바닥 도장을 본다. 파란색 물감으로 찍은 손도장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마침내 말한다. 너무 보고 싶다고.

슬픔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애도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무거운 슬픔을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매일 앉아서 생각하고, 슬픔을 지우기 위해 즐거운 기억을 덮어쓴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했다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다음의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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