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롱 샷>, 2019

거의 승산이 없는 코미디

by 전하민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영화리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살스럽고 공격적인 논조로 나름의 팬을 가지고 있던 기자 플란스키(세스 로건)는 돌연 사표를 낸다. 회사가 자신이 욕하던 거대 언론사와 인수합병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백수 됨을 위로해주는 절친 랜스(오셔 잭슨 주니어)와 함께 참석한 자선회에서, 그는 샬롯(샤를리즈 테론)을 만난다. 그녀는 어린 시절 플란스키의 보모 역할을 해준 이웃이자, 그의 첫사랑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세계의 환경을 위한 공약을 걸며 선거에 출마했던 그녀는, 미국의 최연소 국무장관이자 차기 대선후보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자선회에 참석한 거대 언론사 대표 웸블리(앤디 서키스)를 면전에서 욕하다가 계단을 구르며 망신 당한 플란스키의 모습을 좋게 본 샬롯은 그에게 연설문 작가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잠시 의견 출동이 있었지만 결국 둘은 한 팀이 되어 환경 연설을 하며 전세계를 돈다.




세상을 욕하고 옷차림으로 소심하게 복수하는 남자와 전 세계의 시차를 고려하며 초단위로 움직이는 여자.

<롱 샷>은 그 둘의 만남과 사랑을 담은 코미디다.




이 영화에는 관객을 주목시키는 몇 가지 대목이 있다. 먼저 전통적인 성 역할이 뒤바뀐 설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들이다. 전세기를 타고 도착한 직후 무언가 말을 하려는 플란스키를 막는다던가, 옷을 갈아입게 시킨다던가 하는 장면들은 익숙하지 않아 눈에 띈다. 동시에 그럼에도 바뀌지 않은 내러티브 역시 눈에 띈다. 이성적이고 철두철미했던 샬롯은 플란스키를 만나며 점점 감정적으로 변한다. 결국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지만, 백악관에서 인터뷰하는 것은 영부군 플란스키다. 남녀의 역할이 바뀌었더라도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또 캐릭터와 사건이 붕붕 떠다닌다. 샬롯은 미국의 국무장관임에도 너무 쉽게 괴한의 총질을 받는다. 지하실에 단둘이 있을 기회를 주려는 목적이라면 그보다 나은 사건도 있었을 것이다. 또 그녀는 나랏일에 스트레스를 받아 약물을 하고, 그 덕에 인질 협상에 성공해 대통령이 될 정도의 지지를 확보한다. 코미디 영화라 해도 그건 조금 심했다.

몇몇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특히 마지막 '와칸다 포에버'는 대단했다.) 보는 내내 기분이 가라앉았다. 차라리 다른 설정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적이고 신랄한 기자와 정치인의 만남 치고는 밀도 높은 대사가 전혀 없었고, 남녀의 역할을 바꿔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배우들의 연기와 급변하는 스토리에 의존한 코미디가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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