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
원천 저수지는 조깅을 하기 꽤 좋은 곳이다. 가장 빠른 코스로 한 바퀴를 돌면 3km 정도여서 거리 계산을 하기 편하고, 그 거리는 몸의 상태와 기분에 따라 한 바퀴를 더 돌거나 덜 돌기에도 적합하다. 대부분의 길이 나무데크로 되어 있어서 무릎에 부담이 적다. 발을 디딜 때마다 데크가 흔들리며 미세한 울림을 뱉고, 나는 그걸 이어폰 너머로 어렴풋이 느낀다.
오늘은 이 코스를 네 바퀴 뛰었다. 거리로 따지면 12km로, 10km를 넘게 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3월 1일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한 달 동안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달렸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나 많이 뛴 것이다. 다 뛰고 나서야 종아리 뒤편이 뻐근한 걸 느끼고, 집으로 돌아와 알이 배기지 않도록 충분히 다리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왜 달리기 시작했을까? 그렇게 싫어하던 달리기를. 초등학교 때 나는 언제나 반에서 가장 느린 아이였다. 비유적인 게 아니라, 실제로 꼴등이었다. 당시 나의 엉덩이는 질펀했고 종아리에도 힘이 없었다. 오래 달릴 끈기도 부족해 언제나 중간에 포기하고 걸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살이 조금 빠지면서 꼴등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보긴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던 내가 조금이나마 육체를 사용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바로 줄넘기였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에 나는 환골탈태를 꿈꾸며 매일 줄넘기를 하고 10kg 정도를 감량했다. 그러다 군대에 가서는 반강제적으로 3km를 뛰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체력이 상당히 좋아졌고, 운동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스스로 원해서 달리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러닝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주로 삶의 변환점을 만들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확실히 달린다는 행위는 건강과 관련이 깊다. 육체적 건강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맑고 또렷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나의 계기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누군가에게 최근 나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말한다면,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와 손쉽게 연결 지을 수 있으리라. 작년 말에 5년간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얼마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우리는 2년 넘게 만났다.
지나간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그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니 홍대 근처에 살 이유도 더 이상 없어져서, 나는 8년 동안의 자취를 끝내고 부모님이 계신 광교로 내려왔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하는 일이 바뀌고, 동료가 바뀌고, 연인이 바뀌고, 같이 사는 사람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체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아졌고 잠도 푹 못 잤다. 주중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고, 주말에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문득 베란다 아래로 호수가 보였다. 그래서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