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과 네 번의 기지개 (1/4)
명령이나 권위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반골(反骨) 기질이라고 한다. 한자 그대로 뼈가 거꾸로 되었다는 뜻이며, 삼국지의 촉나라 장수 위연과 관련이 있다. 백성들을 이끌고 봉기를 일으켜 탐관오리를 살해한 위연은 뒤통수가 눈에 띌 정도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고 한다. 마치 뼈가 거꾸로 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사실 한자도 잘 모르고 삼국지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지만, 반골이라는 단어의 뜻과 어감을 모두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 한 기질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요가 스튜디오에 가기 전, 근처에 위치한 한남동 페이스갤러리를 방문했다. How Objects Grasp Their Magic이라는 제목으로 리처드 터틀과 임충섭의 2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둘이 살아온 인생은 당연히 다를 텐데, 그들의 접근 방식과 그로 인한 결과인 예술 작품들은 높은 수준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둘 다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사각형의 캔버스 대신 아상블라주,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그 자체는 지금이야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1941년생 동갑내기인 그들이 이런 작품들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당시에는 분명 파격적이었을 테고, 누군가는 그걸 불쾌하게 여기거나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리처드 터틀은 버려졌거나 버려져야 할 것 같은 사물들을 모아 작품을 구성한다. 이런 아상블라주 작품들은 대부분 나무판자를 겹쳐서 캔버스처럼 쌓고 그 위에 무언가를 더 하거나 스프레이를 뿌리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판자 군데군데 작은 나무 조각을 이용해 만든 입체 형태는 마치 주택 지붕처럼 보인다. 아파트형 공장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건축적 맥락 안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누군가의 집, 일터일까? 어떤 작품에는 플라스틱 밀폐용기 위로 일회용 숟가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거기에선 밥벌이와 관련된 일종의 애환이 느껴졌다.
임충섭의 작품 시리즈 중에서도 리처드 터틀과 비슷한 방식으로, 버려진 사물들을 모아 만든 아상블라주가 있었다. 그것들도 괜찮았지만 사실 <쌈>, <쌀>과 같은 고유한 작품에 더욱 눈이 갔다. 단색의 차분함 속에 쌀과 채소를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순수가 담겨있었다. 오랫동안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전시실 한쪽으로 임충섭이 작업하는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재생되었는데, 거기서 그는 작업복을 입고 타카를 이용해 자신만의 캔버스를 직접 만들고 있다. 커다란 나무로 구조물을 만들고 거기에 캔버스를 덧씌우는 고된 작업을 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시를 보고 나와 요가 스튜디오로 향했다. 4주간 진행되는 '오늘 요가' 프로그램의 첫째 날이다. 선생님은 전날 스튜디오 주소와 시간 등의 안내사항과 함께, 일기장을 꼭 지참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5-7분 정도 일기를 쓴다는 것이다. 펜과 종이로 일기를 써본 게 언제였는지를 떠올려보니, 까마득하게 먼 예전이었다. 서랍을 뒤져 그나마 최근에 썼던 주황색 노트를 꺼내 챙겼다. 내가 사랑했던 1,100원짜리 마하 펜과 함께.
노트의 마지막 기록은 2015년 11월 2일. 7년 전 내 생일에 채집한 단어들이었다. 소제목으로 '혼자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가 붙어 있는데, 어떤 맥락으로 적은 건지 모르겠다. 혼자라는 게 외로워서 그랬는지, 누군가와 함께 있었는데 사실은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랬는지.
페이스갤러리에서 나와 이솝과 르 라보, COS 매장을 지나 스튜디오가 위치한 건물로 들어선 후, 옷을 갈아입고 요가 매트 위에 앉는 순간까지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소란스러운 밖과 달리 내부는 절간처럼 고요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며 맡는 향, 탈의실의 조약돌 손잡이, 단정한 실내장식, 통창 너머로 펄럭이는 우크라이나 국기, 그리고 요가를 수련하러 온 사람들. 다들 엎드려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남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수업은 다른 요가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다. 아쉬탕가의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일부 동작과 몇 가지 변형 동작들이 있었고,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진 않았다. (물론 나는 절반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했지만) 한 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가벼운 땀이 배어 나올 정도로 수련을 했다. 통창을 통해 한남동의 작은 건물들과 그 너머의 산이 보였다. 밖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요가를 하면서 햇빛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꼈던 적은 이제껏 없었다. 실내에서 수련을 할 때에는 미처 몰랐던 감각이라, 언젠가 야외에서 요가를 해보고 싶다고 문득 생각했다.
수련이 끝나고 나니 해가 거의 저물었다. 토요일 이 시간의 한남동은 한껏 꾸미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냥 집에 가기 아쉬워 근처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가볍게 저녁이나 먹자면서 만나 2차로 와인바에 갔고, 헤어지고 나서 예전에 자주 가던 232에 들러 올드 패션드를 한 잔 더 마셨다.
누가 알까? 당시에는 이상했던 리처드 터틀과 임충섭의 방식이 지금은 익숙한 변주의 하나로 느껴지는 것처럼, 주말 낮 시간 번화가 근처의 요가원이 남자들로 붐비는 날도 올지 모른다. 언젠가는 말이다.